기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성당 천정의 낡은 선풍기가 날개 언저리의 사람에게만 바람을 주듯이 말씀은 군데군데 저만치서 맴돌고 가슴에 까지 와닿지 않습니다.
오늘도 가난한 내 이웃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고 법을 만드는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자고 하는데 나는 자꾸 창 밖으로만 눈이 갑니다.
저녁이 오는 창 밖에는 가시나무 밤나무 사이로 망촛대가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밝음의 그 끝에 노을이 잠깐씩 머물고 이내 흐려지는 창밖 어딘가에 주님이 계실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저 숲속 망촛대 사이에 서서 어두워오는 이 세상의 하늘 끝을 바라보고 서 계실 것 같습니다. 뜻없이 되풀이하는 기도소리 가득한 이 성당을 나가셔서 어두운 거리를 고뇌하며 거닐고 계실 것 같습니다.
오늘도 저녁미사의 맨뒷자리에 앉아 또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인들만이 다니는 어느 성당밖에 한 흑인 어린아이가 울고 있더랍니다. 그 아이에게 예수님이 다가가셔서 「얘야 너왜 울고 있니」하고 물으니까 「주님 계시는 저 성당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요」하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괜찮아 얘야, 나도 저안에 한번도 들어간 일이 없느니라」하시더랍니다.
인종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성을 차별하며 계급적 차별이 있는 곳에 주님은 차별하는 이들을 위해 그곳에 계시는 않을 것입니다. 아집과 독선이 있고 이기와 탐욕이 있는 곳에 주님은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천년전에 그러셨듯이 병든자 가난하고 차별받는자 쫓기고 억눌림 당하는자 의에 굶주리고 정의에 목말라하면서 진실하나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가는자 곁에 주님은 함께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쫓기는 자의 곁에 있습니까. 억압받고 일터를 빼앗기는 자 곁에 있습니까. 우리가 어느새 의로운 이들을 쫓아내는 자들 곁에 있지는 않습니까.
옳은 일을 하다 박해받는 자들 곁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당 밖에는 돈도 권력도 가지지 못해 제 몸뚱아리 하나를 던져 열심히 일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친다 끌려가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끌려가고 매맞고 옥에 갇히는 동안 기도를 잊고 주일을 지킬 수 없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다가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에서 나온 권력을 거부하고 이기와 탐욕만을 지탱하는 자본이어서는 안된다고 외치다 고난을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식을 잃고 아내와 남편을 빼앗긴 사람들, 형제를 잃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어쫓긴 사람들 중에 우리가 그들을 내쫓는데 알게 모르게 침묵으로 동조한 때문에 버림받은 사람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웃을 위해 기도합시다」하고 크게 외치고「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하고 모두 입을 모아 노래하지만 고난 받는 이웃을 위한 일 하나 실천하지 않는 매일매일의 우리 기도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리라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들은 내 이웃을 위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채 눈과 귀를 닫고 있어도 주님이 다 알아서해 주시리라 믿고 있는건 아닙니까.
어쩌면 비명을 지르는 이웃들이 내 평화로운 마음을 해치는 악의 세력일런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악이라면 법을 내려 주십사하고 기도하고 싶을는지 모릅니다.
그런 우리들 중산층 이상을 위한 주님이 아니라면 그런 주님을 버리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내 기도속에는 그런 내 이기적인 주님만을 섬긴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구멍 뚫린 배밀창으로 무리 스며들듯이 끝없이 흘러 들어와 이 여름밤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 이 여름밤 성당안에 앉아 저는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