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viator! (인생은 나그네 길)라는 표현은 신부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다시 이말을 되씹어 봅시다. 아마도 삶이란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는 짧고도 먼 여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신부님, 우리는 작별의 슬픔보다는 한 영혼의 이야기가 먼 앞날까지 울려줄 메아리를 더 기다릴 것입니다.
화창한 봄날 아침, 새싹이 움돋고 수줍은 꽃망울이 미소를 머금고 있던 성주간,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을 때, 신부님은 이 세상과 작별하셨습니다. 이 거룩한 일치 안에서 우리는 죽음의 슬픔보다는 그리스도인의 환희와 영광의 찬비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유난히 외골스럽고 과묵하셨던 신부님,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겨놓으신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끈끈한 애정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번 더 신부님의 모든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수도자로서 학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생애는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와 희망을 남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부님께서 평소에 들려주셨던 말씀과 남겨놓은 글들을 통하여 신부님의 철학적 사상과 영성적 교훈을 간추려 보고자 합니다.
1939년(20세) 봄 일본 예수회 새 세대의 「히로시마 수련원」개원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맨 먼저 예수회의 수련자로 입회하여 수도자로서의 길을 밟으셨습니다.
이냐시오 로욜라, 마태오 리치를 사부로 모시고 있는 이 예수회의 입회는 바로 한국 예수회의 여명기에 해당한다고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사의 새 아침처럼 서방 선교사의 주도권 아래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것이 아닌 것처럼, 예수회의 한국 진출 역시 외국인 선교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한국인의 예수회 입회로부터 출발한 것입니다.
젊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상지대학에서 철학의 향연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상지의 하느님」은 특별한 은총과 섭리로 식민지 지배하에 있던 한 한국의 젊은 지성을 한국 예수회의 머릿 돌로 마련하셨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신부님은 깊은 신뢰를 갖고 수도자로서의 50여년을 예수회의 한국화를 위해 온전히 봉헌한 것입니다.
『한국 예수회는 한국의 토양에서 한국인의 손으로 가꾸고 한국다운 영성을 발견할 때만이 비로서 참다운 예수회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신부님의 남다른 완고함(?)이 문제가 되었다면, 이러한 확신 때문일 것입니다.
신부님은 「동서의 상봉」이라는 광활한 일터에서 예수회 수도자로서, 서강대학 철학교수로서, 교육자로서 한 평생을 일관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서의 만남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상봉이 가능하는 것이 신부님의 확신이었습니다.
1952년, 서독 파테르보른대학이 주최한 성 토마스 축일 초청 강연회에서 발표한 논문 내용에서 신부님의 철학사상과 영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애하는 주교님, 교수님 그리고 대학생 청중 여러분! 전교지방 출신의 한 젊은 수도자로서 유서 깊은 이 주교좌대학도시에서 「구원의 철학에 있어서 동서상봉」이라는 주제 아래 발표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시작된 강연은 동서상봉의 철학적 가능성을 전제하고 그 방법과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수도회 못지 않게 가톨릭 지성인의 활동을 강조하셨습니다.
1956년, 10연년간의 동서편력을 끝내고 마침내 귀국하셨을 때, 조국은 6ㆍ25동란에 의한 상처도 채 아물기 전이었습니다. 많은 한국의 지성들은 정신적, 물질적 절대빈곤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30대 후반의 정열과 맑은 영성, 그리고 빛나는 지성을 겸비한 신부님의 존재는 젊은이들의 보람과 희망이기도 했습니다.
운석 장면 박사님, 장발 학장님, 박갑성, 구상 교수님 등과 함께 지성인들을 규합하여 가톨릭 지성의 광장을 마련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침내「장안문화원」의 창설로 이어지고, 가톨릭 아카데미 운동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 대학생 운동의 요람으로 「뉴먼 클럽」이 탄생했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강대학 창립을 위한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안문화원」창립기념 강연회에서 『가톨릭 지성인의 입장』이란 내용으로 가톨릭 지성에 대한 정의와 활동에 대하여 신부님의 사상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가톨릭 지성의 특징은 「엘리트」라는 말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뜻하는 엘리트는 비교에서 오는 개념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가치의 절대개념인 것입니다. 이것은 토미스트 철학에서 존재를 선(善)이 라고 하고, 이 선(善)을 진(眞)과 미(美)로서 환치된다는 생각도 상통합니다』
이와 같은 사상적 맥락에서 신부님은 1956년 서울의 여러 대학교(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을 중심으로 뉴먼 클럽을 조직했습니다. 이것은 본격적인 가톨릭 엘리트 양성을 위한 실천이었습니다.
1960년 뉴먼 어쏘씨에이션을 조직하고 기관지『갈대』라는 학술지를 창간했습니다.
『지평선이 보이는 물가에 나는 서있다. 내 앞에 하늘만이 닫는 넓은 세계가 열려있고… 나는 따뜻한 남풍에 흐뭇하고, 고요한 때도 갖지만 또 모진 폭풍에도 가리워 주는 것이 없이 맞고 있다…』라고 창간호권두언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부님이 불란서의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빠스깔을 얼마나 편애하였음을 짐작케 합니다. 갈대와 같이 연약한 존재, 그러나 사유할 수 있기에 위대한 존재라는 빠스깔의 인간적 실존성을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빠스깔의 인용을 지성인을 갈대에 비유하면서 그 성격을 뉴먼 추기경의 사상으로 다시 심화시켜보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즉 「생각하는 갈대」에서 「행동하는 갈대」에로 진전해야 하는 뉴먼 클럽의 역동성의 강조점을 읽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학문은 사랑에 귀결되지 않으면 불모로 남을 것이며, 저주받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학문을 인류에 대한 봉사에서만 인간적인 것으로 머물 수 있기 때문에 학문을 언제나 인간적인 것으로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찌기 쟈끄 마리땡의 영성적 제자임을 자처하시던 신부님의 사상은 한 마디로 「충전적 휴머니즘」(I’ humanisme int’ egral)하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충전적 휴머니즘」은 인간을 보다 진정한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사상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자연과 역사에 있어서 풍부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참여케 함으로써 인간의 본래적 존엄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지향케 만드는 사상입니다.
『세계를 인간 안에 집중시키며, 또 인간을 세계 만큼 넓게 퍼지게 만든다』는 가치윤리학은 신부님께서 마지막으로 집필한 철학논문입니다.
이상으로 고 김태관(도비아) 신부님의 사상적 파노라마를 그의 생애와 논문을 통해서 간추려 보았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새로운 신자의 씨앗』이라고 하신 옛 교부의 말씀처럼, 김태관 신부님의 죽음은 한국 예수회의 새 역사의 증거자로 기록되는 순간이며, 서강대학교 창설자의 기념비가 새겨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신부님을 아끼고 사랑하고 따르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이 땅에 이룩하지 못한 주님의 유업을 계승해서 기리기리 후세에 전할 것을 다짐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경애하올 도비아 김태관 신부님!
다시 한번 사부님의 성함을 친지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불러봅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스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망자에게 평안함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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