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매스미디어의 시대라는 말의 사용은 오히려 어색하다. 미디어를 접하지 않고는 살기조차 힘든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부터 TV에 이르기까지 전파매체의 혁신적인 발달은 우리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또 양적으로 크게 변화시켜 왔다.
신문을 보지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옛날、 글을 미처 깨치지 못한 사람에게는 신문보다도 훨씬 빠른 라디오ㆍTV가 이를 대신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온갖 정보를 이들 미디어들은 매일처럼、 아니 매시간마다 우리에게 쏟아놓는다. 며칠동안이라도 이들 매체를 접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뒤처질 수 밖에 없다. 우선 대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매일처럼 변화하는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매스미디어인지도 모른다. 매스미디어의 긍정적 측면만을 생각한다면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의 역기능 문제는 매스미디어가 주는 엄청난 유익만큼 심각해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매스미디어의 역기능문제는 그의 발달속도와 정비례한다고 할만큼 우리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신문지면을 가득히 메우는 「구인광고」중 상당부분이 인신매매의 장이 되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전파매체의 총아로 불리는 TV의 폐해는 매일처럼 우리의 일상을 좀먹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이 「바보상자」는 무분별한 유행어의 남발로 우리의 아이들을 노예로 잡아두고 있는가하면 계층간의 위화감만 부추기는 내용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오직 파는것에만 최선을 다하는 듯한 기업들의 상품경쟁、 그 산물인 상업광고의 무절제한 범람역시 TV가 주는 역기능의 큰 부분들이다. 매스미디어의 기능ㆍ역기능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연적으로 필요한 양면인지도 모른다.
5월 27일은 세계교회가 함께 지내는 홍보의날이자 홍보주일이다. 홍보의날이자 홍보주일이다. 홍보의날은 우리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홍보매체에 대해 신자들의 의식을 일깨워주기위해 교회가 특별히 설정한 날이다.
홍보의날 설정을 통해 우리는 매스미디어의 중요성을 읽어야만 한다. 현대의 복음선포에 있어 매스미디어의 역할은 그의 발전과 다양화 추세와 맛물려 중요성이 날로 비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은 최근 방송국 설립과 더불어 전파매체로까지 발전하는 모습으로 성장했다. 이같은 발전적 추세는 효율적인 복음선포라는 차원에서 볼 때 재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중요한 성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울러 쏟아지는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속에서 그의 역기능 문제가 심각한 오늘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또 하나의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전파매체 시대로 돌입한 한국교회의 발전적 성장을 기대하면서 지금까지 되풀이 되어온 한국교회 홍보매체들의 되어온 한국교회 홍보매체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우리교회는 1개의 방송과 1개의 일간지、 2개의 주간신문、 그리고 6~7개에 달하는 월간잡지를 보유하고 있다. 교회의 테두리안에서 교회적인 내용을 다루는 전문적인 성격의 매체로 국한시키자면 방송과 일간지는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이중에는 지령 80년이 넘어선 잡지와 60년을 넘어선 신문등 여타 일반매체들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닌 매체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현재교회 홍보매체가운데 그 어느것 하나도 확실한 자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옳을 것인다. 교회매체들의 살림살이는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구멍가게」만도 못한 실정이다.
고도의 경제성장속에서 함께 자라온 교회、 그 교회의 발전속에서 함께 호흡해온 홍보매체들의 「제자리 걸음」은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들이、 아니 신자들이 교회 매체를 읽지않기 때문이다. 교회 자체가 홍보매체에 관심을 두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심없는 교회와 신자들속에서 교회의 매체가 성정할 수 없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물론 교회매체들은 일반의 그것과 비해볼때 재미가 없다. 흥미와 재미만으로 매체를 선탁한다면 교회매체들은 거의 모두 자격 미달이다. 선택권 밖에 있는셈이다. 그러나 「필요」라는 측면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교회 매체들은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적 사랑을 좀더 윤택하게 살찌우기 위한 「필요」에 의해 선택이 되어야 마땅하다.
교회매체들에게 선택의 필요조건이 불충분하다면 그것 역시 교회와 신자들의 책임이 크다. 구멍가게속에서、 가내공업속에서 근사한 상품이 만들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은 신문과 잡지를 만드는 우선의 책임은 물론 「만드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러나 만드는 사람들의 질을 높여주는 역할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있는」것이다.
교회 신문의 입장만을 한번 얘기해보자. 어떤 사람들은 신문이 너무 어렵다고 얘기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문의 질이 낮다고도 말한다. 딱딱한 내용이 많다고도 하고 그 반대의 주장으로 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내용이라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 또 계속 그 입장을 고수하라고 격려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교회신문만큼 만들기 힘든 신문은 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움도 보다 많은 독자와 함께라면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번 홍보주일에 바라는 작은 소망은 우리교회안에 「○○신문」이、 「○○잡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이라도 알릴 수 있는 풍토조성이다. 「내것」과 「네것」이라는 장벽에 부딛쳐 존재 자체를 알릴 기회를 빼앗긴다면 얼마나 서글픈 현실인가.
「매체의 선택권」은 신자들 각자에게 맡겨야 옳을 것이다. 우리 신자들은 이미 「자신이 읽어야할 매체를 스스로 선택할 만큼 성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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