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이 나와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상태에서 정성을 쏟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하나 둘씩 내곁을 떠난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적인 대접보다는 돈 몇푼의 유혹에 철새처럼 3~6개월 만에 이직장 저직장으로 옮겨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기능공에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육성책은 그때만해도 실질적으로 전무하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솔직히 신앙인의 양심으로는 사업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끼며 내가 꿈꾸던 일터는 한날꿀에 그치는 것 같아서 매우 서글펐다. 세속적인 사업과 하느님의 사업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면서도 신앙인의 자세를 지키려고 애썼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때는 건설경기가 활성화 되려는 조짐이 보였으나 갈수록 해외시장에 먹구름이 끼면서 경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경험도 없는 볼트 제조업에 손을 대고 보니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고향친구의 보증을 서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받고 매우 고민을 하다가 어려울 때 서로 돕는게 친구이고 서로 믿고 살만한 사이에 불신을 한다는 것은 평소 사람이 사람을 못믿고 사는 것이 불행중에 가장 큰 불해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 해온 자신을 떠올리면서 쾌히승낙하였다. 그런데 5개월 후에 부도가 나고 끝내는 나에게 경제적인 파탄을 안겨줄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1985년 1월 25일. 그날은 나에게 경제적인 사형선고를 내린날이며 우리 부부가 고난의 길로 인도되는 날이었다. 하루 아침에 빈털터리가 될 지경에 이르고 보니 하두 눈앞이 캄캄하여 하느님을 원망할 정신도 없었다. 우선 이 일에 관련되어 있는 친구들이 나 때문에 피해를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되어 보증을 서준 회사의 부도를 사채를 빌어서 정리해 주어야 했다. 나는 세상을 살아 가면서 돈은 잃더라도 신용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전재산을 팔아서라도 내가 잘못 뿌린 씨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 주위에서는 우선 재산을 도피 해놓고 보라는 권유도 있었으나 그런 부도덕한 짓을 하고는 세상에 얼굴을 내밀고 살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하느님께 기도 할 때 나의 감정에 치우쳐 기도라지 않게 도와 주십사고 성모님께 간곡히 기도 드렸다. 왜냐하면 자신이 궁지에 처하고 보니 하느님 앞에서도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는 마음과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피해를 준 친구는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자 교도소를 들어가 버리고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빚만 남게 되었다. 그런데 후에 알고보니 처음 나에게 설명하고 약속한 내용이 거짓임을 알고 배신감과 말할 수 없는 증오심이 나를 몹시 괴롭혔다. 나는 이러한 자신이 싫었으며 특히 아내에게 대한 미안함 때문에 마음 둘곳이 없었다. 나는 그때마다 성체앞에 가서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친구를 용서 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을 저에게 주십사고 기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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