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계절인 가을은 모든 과일들이 영글어 간다. 이맘때즈음은 농부들의 손은 흠없는 과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곤충들과 맞서 싸우기 바쁜 때이다. 포도밭을 날아다니는 풍뎅이와 벌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봉지를 씌우고, 배발은 까치들을 쫓느라 총을 쏘기도 하고, 논에는 허수아비를 세워 참새들의 접근을 막는다. 그런데 사람들의 코는 곤충들의 코보다 훨씬 큰데도 과일들의 단내음은 그 놈들이 재빨리 맡는 것을 보면 본능인지 모르겠다. 탐스레이 잘 익었다 싶으면 어디서 알고서 기어들어가 있다. 그래서인지 벌레먹은 복숭아를 먹으면 예뻐진다고했을까!
요즈음은 곤충들보다 사람들의 욕심이 너무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작은 숲만 있어도 뻐꾸기가 와서 울어주고 간다. 개 밥통을 지켜보면 참새, 비둘기, 까치들이 흘깃흘깃 눈치보며 먹고 가고, 심지어는 두려움과 공포를 안고 쥐까지 먹고 간다.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너무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지금보다 가난하게 살았지만 까치밥을 남겨두었다. 새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는 일용할 양식을 땀흘려 먹게 하셨지만, 공중의 새와 들꽃은 수고도 없이 길쌈도 없이 먹여 주시고 입혀주신다(마태6, 25~30) 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위해서 다른 피조물의 것까지도 탐욕 스럽게 빼앗고 있지 않은가!
하느님의 피조물을 사랑했던 성 프란치스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하고 겸허한 자세로 자연을 대하였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들풀」과 「들에 핀 백합화」 (마태6, 28ㆍ30)를 말씀하셨기에 프란치스꼬는 정원에 백합꽃을 가꾸기를 수사들에게 말했다. 그것은 단지 백합의 꽃향기를 맡기 위함도 아니요, 또한 순결의 상징을 나타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프란치스꼬는 다른 수사들로 하여금 이러한 복음의 꽃들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대한 더욱 감미롭고 생생한 기억을 더듬어 그 은혜에 감사드리게 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야채밭 옆에 꽃밭을 만들도록 청했다. 또한 「생명의 나무인 십자가」를 기억하면서 한그루의 나무를 통해서도 그리스도를 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구더기까지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시편22, 6) 라고 시편에서 예언한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우리가 느끼는 징그럽다는 느낌을 뛰어 넘어 명상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입을 통하여 불리워진 많은 피조물들을 그는 진정 그리스도와 연관하여 생각하고 사랑하였던 것이다. 성 프란치스꼬의 이러한 사상은 말년에 거의 눈이 멀었을 때의 고통 중에서 쓴 「태양의 노래」 (일명 피조물의 노래)에서 열매를 맺는다.
이 노래는 하느님(神)과 자연 그리고 인간을 찬미하면서 하느님과 피조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성인은 하느님을 결코 자연과 동일시 한다든가, 하느님의 초월적 차원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너무 분리된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자연 사이의 관계를 치유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성서의 근본정신인 「하느님과 네 이웃을 사랑하라」(루가10, 27)는 말씀을 인간만이 아닌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포함하여 확대 해석한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엄하신 분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육화(肉化)하신 그분의 인간 사랑 안에서 그 분을 「맏형」으로 불렀으며, 또한 인간 아닌 모든 피조물들을 「형제 태양, 누이 달, 형제 바람자매 물, 형제 불」 등으로 부르면서 우리 인간과 형제애(兄弟愛) 관계로 일치케 하였던 것이다.
「태양의 노래」는 단지 피조물에 대한 아름다움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현존에 대한 인식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상으로 피조물을 사랑하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무엇보다도 인간의 탐욕스런 이기심을 불식하고저 탐이다.
에릭 도일(Eric Doyle) 신부는 그의 저서 「성 프란치스꼬의 태양의 노래」안에서 말하길 『물질과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깊은 존중의 전달을 가장 실감나게 하는 방법은 「태양의 노래」를 외거나 부르도록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도 사계(四季) 의 수호자요, 생태학자들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꼬의 「태양의 노래」를 우리들의 삶 속에서 노래하며 성인의 마지막작품을 외워보자.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여! /찬미와 영광과 칭송과 온갖 좋은 것이 당신의 것이옵고/호올로 당신께만 드려져야 마땅하오니 지존이시여! /사람은 누구도 당신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여이다.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언니 해님에게서 찬미를 받으사이다/그로 해낮이 되고 그로써 당신이 우리를 비추시는/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당신의 보람을 지니나이다/지존이시여! 누나 달이며 별들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빛 맑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의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다.언니 바람과 공기와 구름과 개인 날씨, 그리고 사시사철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저들로써 기르심이니이다/쓰임많고 겸손되고 값지고도 조촐한 누나 물에게서 내 주여 찬미를 받으시옵소서. 아리고 재통되고 힘세고 용감한 언니 불의 찬미함을 내주여 받으옵소서/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주시나이다. 내 주여 누나여 우리 어미인 땅의 찬미를 받으소서/그는 우리를 싣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모든 가지 과일을 낳아 줍니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받으사이다. 평화로이 참는자들이 복되오리니/지존이시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소이다/내 주여! 목숨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한다/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죽을죄 짓고 죽은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도다/당신의 짝없이 거룩한뜻 좇는자들이여! /두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내 주를 기려 높이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드릴지어다/한껏 겸손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어다.
(최민수 신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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