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상에 가지가 올라왔다. 가지를 싫어하는 나는 습관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 가지나물을 보니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사람이 있었다.
「미국할머니」. 이 이름은 오빠와 내가 붙인 이름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알던 할머니였다. 유난히 머리가 희시던 그분. 그 흰머리 때문에 우린 그 할머니를 미국할머니라 불렀다.
왜그랬는지 모르지만 난 그 할머니가 무척 싫었다. 방학이 되어 시골에 가면 으레 그 할머니께서 놀러 오셔서는 잔소리를 늘어 놓으셨는데 난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공부하라」하셨다가는 「놀라」고 하시고. 변덕스러운 행동이 너무 너무 답답하고 싫었다. 어느날 아침 할머니께서 부르셔서 억지로 가보니 마당에서 가지를 뚝뚝 따셔서는 그 때묻은 치마에 쓱쓱 문지르시곤 쑥 내미시는 거였다.
먹기싫어서 안받고 있으면 『가지를 잘 먹어야 이뻐지는 벱이여』하시며 반을 뚝 잘라 끝내 내게 주셨다. 난 한입 베어물고 할머니께서 다른데 가시길 기다렸다가 얼른 변소에 가서 다 뱉아 버렸다.
해마다 방학이면 그런일을 반복했는데 어느해인가 엄마 아빠께서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시골을 가야겠다고 그러시는 것이었다. 난 별로 슬프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기뻤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거였다.그 때묻은 치마에 닦은, 검보라색 가지를 내미시던 고목같이 거친 손, 그 거친 손이 그리워지는 나는 옛날을 잊어버릴만큼 커버렸나 보다.
오늘 아침상에 오른 가지나물접시에 할머니 얼굴이, 거친손이 자꾸만 비치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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