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성당에 다니는 부부들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말을 얻어듣습니다.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는 장면입니다.
혼인성사를 가리켜 「걸어다니는 성사」또는「사랑의 성사」또다른 말로는 「생활속의 성사」란 말도 듣습니다.
누군가 제대로 부부를 평가했다 싶어서 미소를 짓게 합니다.
그러나 결혼생활 29년으로 접어든 우리 부부로선 슬며시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은 느낌인것을 어찌합니까.
말이야 못합니까.그리스도의 지체란 말은 골백번도 더 합니다. 부부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맞아드려 서로 극진히 보살펴주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듯이 우리 부부(夫婦)님들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된다고 큰소리로 거듭거듭 외칩니다.
부부의 관계는 그들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며、교회의 것이라고 충동질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말이나 못하면 덜 미웁지요.「혼인성사는 신품성사에 못잖게 중요한 성사다.부부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당당하게 받은것이다.
부부의 성사야말로 당신의 사랑을 특별히 증명할수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부부는 하느님 사랑의 대리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말은 천상유수 올시다. 우리 부부는 지난주 인천 주안1동의 김병상(필립보) 신부님과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포도밭을 지나가던 때였습니다.
『신부님! 우리에게 이 포도밭을 반만한 땅만 있어도…』
아내의 이말에 저는 한수 더 넘겨 집습니다.
『반에 반만한 땅만 있어도』키가 커다란 김병상 신부님은 슬쩍 우리 부부를 돌아보시더니 먼 하늘을 보고 말씀 하십니다.
『한평에 몇천만원짜리 땅이 있어봐야 당신네들한테는 소용없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뭣 때문에 해』
얼굴이 화끈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길로 강의실에 들어가서 젊은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외칠 작정이였으니까요.
『혼인성사를 이루어 나간다는 뜻은 교회에 관한 일만 관심을 가지고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활속에서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결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녀가 만나서 잘먹고 잘 산다는것이 아닙니다. 부부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보편적으로 모든이에게 보여 진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별 수 있습니까. 우리 부부는 준비한대로 앵무새가 되어 넉살좋게 젊은이들에게 혼인성사의 아름다움을 역설(?)했습니다.
세상에 원 우리 부부처럼 그토록 능청스럽게 잘도 이죽거렸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한 여름에 털외투를 입고 나선 것 같아서 얼굴이 뜨겁습니다. 사실 가톨릭 신자부부로 산다는 것이 대단히 자랑스럽긴 합니다.
또 그럭저럭 만족합니다. 이젠 다른 길로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막차치곤 고약한 막차를 탄 것입니다. 많은 부부님들은 두 사람이 혹은 가족이 주임미사에 참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만족해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한것으로 압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는 있습니다.
부부는 행복하게, 아니 별로 큰 탈이 없이 산다는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 부부가 주장하듯이 그리스도 당신의 고행에 버금이가는 생활입니다. 전세값을 챙겨야 하고, 출세도 해야하고, 때맞춰 외식도 해야하고, 헌금도 적당히 내야하고, 친구들과 소주도 마셔야하고, 틈틈이 무슨 기념일에는 선물도 해야 서로 불편없이 지낼 수가 있습니다.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의 고통을 실감은 못하지만 우리 부부님들의 어려운 생활은 당신의 아픔에 동참하고 있다고 확대해석 할 수도 있습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우리 부부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구요.
여기서 잠시 한숨 돌리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주일미사를 본다는것은 『사랑한다』는 말과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제도속에서의 행위입니다. 진정한 뜻은 당신네 부부는 실제로 당신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자면 대관절 당신네 부부는 얼마나 사랑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단신들은 가톨릭 교회를 통해 어떤 기쁨을 느끼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대답을 요구하면 상당히 까다로워집니다.저희 부부의 경우엔 상당히 슬퍼지는 느낌입니다.
부부에겐 사랑이 필요한것이 아니라『사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단 한번의 주의기도 라도 손을 잡고 기도하는『것』즉 행동이 필요합니다.
「걸어다니는 성사」란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부는 성서를 지금 쓰고 있는 사도라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생활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요. 이론은 없습니다.『사랑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한15장 8~15절) 할 때도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자세히 보십시요.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부부들로선 서운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의 혼인성사에 대해 과연 우리교회가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사에 비하면 잊혀져가고 있는 성사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단코 변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사제의 신품성사가 사제의 것만이 아닌것처럼, 부부의 혼인성사도 부부의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안방에서 부엌에서 골목에서 직장에서 증명이 되어야 할「걸어다니는 성사」 입니다.
보속의 뜻으로 일년내내 먹고 산다는 이유로 잊고 있었던 임신부님께 사죄의 전화를 걸겠습니다. 미국에 계신양반이라서 상당히 돈도 들것이며 잘못하면 섭섭하다는 야단도 맞을것입니다.
그리고 시골집을 팔고, 갑자기 서울로 이사오신 노모님께 마른 명태라고 사들고 찾아가겠습니다.
그 양반은 마른 명태를 왜 그렇게 좋아 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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