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햇살이 손가락 사이로 술렁술렁 빠져나가면 원고지 갈피마다 붉은 옷을 입고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 반갑기보다는 밉살스럽고 그렇다고 아예 보이지 않으면 왠지 불안한 친구다.
한권의 책이 출간될 때만다 이 친구와 씨름을 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서점이나 어디에서든 책을 펼치면 내용보다 먼저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오자와 탈자」들이 눈에 띈다.
그들은 가끔 독자들에게 불신을 준다. 「책이 틀리다니 … 」라고. 보통 일반인들은 활자화된 출판물에 대해선 과신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나 학생들은 오자를 그대로 인식해서 잘못된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기 쉬우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출판인들은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벌거숭이가 되어 나타나는 오자와 탈자, 불완전한 문장, 그리고 정서를 해치는 악서가 거리에서, 서점에서 화려한 장정을 하고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 옛날 화려한 옷을 좋아한 임금님처럼, 마음이 나쁘고 머리가 나쁘면 보이지 않는다는 옷감으로 옷을 지어 입고 벌이는 해프닝. 임금을 위시하여 신하와 군중들은 그 옷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자신의 죄가 드러날까봐 눈을 의심하면서도 칭찬하기 시작했다. 서로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 .
그럴 때 지나가던 임금님을 본한 어린아이가『어머! 임금님이 벌거벗었네. 하하하. 아무 것도 입지 않았어』그제서야 군중들은 수군거렸다. 임금님이 벌거숭이라고. 이렇듯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마저 상실된 그 군중들의 세계는 이기와 욕심, 위선으로 가리워져 눈뜬 장님이 된 것이다.
우리도 쉽게 대하는 각종 서적들에 눈뜬 장님이 되어 악서와 양서를 구별짓는 일에 무감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베스트셀러라는 화려한 이름과 광고라는 감각적인 매체들에 길들여져 좀더 편하게, 쉽게쉽게, 빨리 빨리 무엇이나 얻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씨앗을 뿌리면 바로 열매를 기다리는 요즘 세대들. 성장과정을 무시한 스피드시대의 소산물,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고 인스턴트적인 사고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예! 』라고 해야 할 것을『예! 』하지 못하고『아니오! 』라고 해야 할것을『아니오! 』라고 하지 못하는 그 군중들처럼 우리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인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일상생활 속에서 오만과 편견, 교만, 위선과 무지로 된옷을 입고 벌거숭이 신앙인이 되어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이 시대의 벌거숭이가 되지 않기 위해 늘 깨어 있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있으라』 (마태오25장) 는 하늘나라의 열처녀 비유처럼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주님을 맞이하듯 좁은 공간에서 가장 넓은 세계를 체험하는 출판작업이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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