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서울 장안동 본당 노인대학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최영숙(안나ㆍ52세)씨가 노인들과 함께 지내며 남달리 느낀 기쁨과 보람을 적은 글이다. 특히 이 글은 현재 서울 노인대학연합회 회장인 박고빈 신부가 장안동본당 주임으로 재임할 당시의 노인대학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노인대학 봉사자로서 처음 할아버님 할머님들을 뵈올 때「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이 어찌해야 하나?」하는 생각에 몹시 두려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인들은 모두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출석카드를 제출할 때에도 서로 앞을 다투어 먼저 가져가려는 모습, 율동을 가르쳐 드리려고 하면『우리가 어린 아인줄 아느냐』고 하시면서 트집을 잡곤 했습니다.
7명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은 각자 한 반씩 맡았는데, 일과가 끝나면 반 회합을 가져 다음주에 나오실 때 숙제를 해오시도록 유도하면서, 노인대학의 독특한 분위기와 긍지를 갖도록 했습니다.
집에서 숙제하실 때는 며느리 등도 두들겨 주면서 며느리와 함께 의논하면서 해오시라고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숙제를 한 모습과 방법에 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로가 어색하고 쑥스러웠던 순간들을 말씀하시면서도 며느리에게 사랑의 표현을 주고 받았다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할머니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서야 그 할머니께서「먼저번 숙제를 이제야 다 했다」고 하시면서 그사연을 들려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평소에 며느리가 못 마땅해서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집안일도 도와주지 않았을뿐 아니라 손자 손녀들 까지도 돌보아 주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숙제는 해야 되겠고 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예수님을 생각하며 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하는 수 없이 집안 청소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엔 손자 손녀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사랑스럽게 대했더니 처음엔 의아해 하던 아이들이 차츰 순진하게 따르며 좋아하더라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그렇게도 보기 싫고 말을 건네기도 역겹던 며느리에게『다녀 오겠습니다』하고 존대말을 쓰면서 며느리가 방 밖으로 나올 때까지 인사를 몇 번이고 했더니, 하루는 며느리가 방문을 열고 감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서 있더랍니다. 그런 며느리의 손을 덥석 잡고 등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맞았더니 자기를 바라보던 며느리가『어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노인대학 숙제 때문에 얼음같이 차가왔던 고부간이 뜨거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화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봉사자로서 첫 보람을 느꼈고 또한 긍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노인들을 깨우치며 노력한 결과 이제는 질서도 잡히고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려는 노인대학생들의 변화하는 자세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전에 노인대학에 다니셨던 한 할머니가 병환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봉사자들이 문병차 그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가정에서나 느끼는 일이지만 이 할머니 역시 겉보기로는 평화스럽고 원만해 보였으나, 고부간의 갈등이 심하다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날에는 기도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무엇인가 핵심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기도로써 주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부족한 저희들에게 슬기로운 지혜를 주십시오!』
두번째 방문에서 저희들은 용기를 내어『할머니、 옛날 시집살이 시절이야기를 좀 들려 주세요』라며 졸라 댔습니다. 표정까지 굳어지며 강하게 거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되풀이 간청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할머니께서 말문을 여시면서 쪽두리 쓰고 연지 곤지 찍고 시집 오던 날부터 옛날 이야기를 희비가 엇갈리는 표정을 지으시며 오랜 시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를 끝마치시고는 부끄러운듯 후련한듯 방긋이 웃으시며 저희들의 손을 지긋이 잡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자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고 성경 말씀이나 신부님께 들은 말씀을 전하면서 할머니께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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