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이제 한 민족은 역사의 새창을 열게 됐다. 확실히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우리 민족의 오랜 숙원인 통일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기대와 희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민족의 기쁨과 희망ㆍ슬픔과 번뇌를 함께 해온 교회도 분열과 대결을 배격하고 화해와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의 모든 백성들과 함께 이를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해 마지 않는다.
공식적인 논평은 하지 않고 있으나 바티깐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환영하고 축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북한이 개방과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이를 크게 고무하는 일이 아닐수 없다.
특히 교황은 한국을 두번이나 방문한바 있을 뿐더러 기회 있을때마다 한국의 통일에 대해 자신이 늘 갖고 있는 관심을 표명해온 바 있다. 교황은 작년 10월 16일 교황청 정기방문중인 한국 주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한국은 갈라져서 미처 평화와 정의안에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이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임을 상기한 바 있다. 교황은 이에 한국 주교들에게 한국민들이 40년 이상이나 가족들을 갈라 놓고 숱한 사회분쟁을 일으켜 온 비극적 분단으로 인해 시달려 왔음을 지적하고, 『전세계적인 정치적 변화와 한국의 노력이 진정한 정의ㆍ자유ㆍ신성불가침한 인권존중을 토대로한 오랜 숙원인 통일을 이룩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갈수 있는 징표』를 이루도록 기대를 표명한 바 있다. (본보 90년 10월 28일자 1면ㆍ4면참조)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교황과 우리 교회가 기대해 마지않던 이러한 징표를 들어내는 것임은 부언을 요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징표가 가능하게 된 데에는 물론 정부가 추진해온 북방정책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의 북방정책이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의 붕괴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것이며 소련과 동유럽 공사주의가 붕괴하게된 것은 바티깐이 지난 30년간 꾸준히 전개해온 동방정책이 그 결정적 원인의 하나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바티깐은 1960년대초 이래 까사톨리 추기경을 중심으로 장기간의 적대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동유럽 여러나라의 공산주의 정권들과 진지하게 협상을 벌여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작년에 은퇴할 때까지 국무원장으로 10년이상 교황측근에서 바티깐의 동방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온 까사톨리 추기경은『자유를 빼앗기고 언제나 타협을 강요당하는 교회라도 아주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하면서 교회에 대한 적대적 환경속에서도 조용한 외교를 통해 끈기있게 다소의 활동공간이라도 확보하고자 노력했고 이렇게 확보된 공간이 가톨릭신자가 다수를 이루고있는 동유럽 여러나라에서 개혁의 물결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원동력의 구심점이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교황이 슬라브출신인 점은 슬라브 민족이 대다수인 소련과 동유럽 교회의 신자들은 물론 모든 반체제 인사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회복을 위한 투쟁에 커다란 용기와 정신적 힘을 불어 넣어준 것이 사실이다.
소련과 동유럽 개혁의 물결의 기폭제 역할을 한 폴란드의 자유노조만하더라도 과연 가톨릭교회의 지원없이, 그리고 무엇보다 교황의 예리한 정치적 판단력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지원없이 오늘의 역사를 이루어 낼수 있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티깐은 그동안 인권은 종교의 자유임을 역설하며 이를 보장하도록 소련과 동유럽 정권을 설득해 왔으며, 전통적인 무신론적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정한 소련과 동유럽 모든 국가들이 개혁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989년이래 시차는 있지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바티깐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던것이다.
더욱이 낙후된 경제의 재건을 위해 서방의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는 소련과 동유럽 지도자들에게는 자신들의 개혁 정책의 대외 신뢰도를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교황의 축복을 얻을 필요가 절실하며, 이를위해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고서는 어림없는 일인만큼 바티깐의 동방정책이, 정부의 북방정책이 결실을 맺어 남북한의 유엔가입을 가능하게 한 세계정세의 변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일방적인 호교론적 시각이라고 할수 없는 것이다.
바티깐의 동방정책은 아시아공산주의 국가들을 향해서도 꾸준히 전개돼 왔다. 바티깐은 그동안 꾸준히 협상을 벌여왔으며, 그 결과 베트남교회는 어느정도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티깐은 중국에 대해서도 종교의 자유가 가장 기본적 인권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그동안 교황에게 충성을 서약한 친정부적 주교 20명을 정통주교로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5월에는 교황에게 충성했다는 이유로 30년간 옥고를 치른 쿵 핀메이 주교를 1979년 비밀리에 추기경으로 임명한 사실을 중국당국의 적대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공개한 바 있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붕괴된 만큼 바티깐은 아시아로 눈을 돌려 아시아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해 종래의 동방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력에서 바티깐은 1987년 평양에서 개최된 비동맹국 각료회의에 장익 신부를 포함한 옵저버단을 파견하고, 1988년에는 장익 신부를 바티깐 특사 자격으로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하도록 하는 등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고 북한당국과 한국교회와의 접촉을 주선한 바 있다.
바티깐은 또한 1989년에는 한국사제 1명과 수녀 수명을 평양의 장충성당에 파견하도록 시도했으나 실패로 끝난바도있다.
그러나 세계정세의 변화에 북한도 조만간 적응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자체가 북한당국의 이러한 적응의 징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 된 이상 유엔에서 강력한 정신적 여향력을 지닌 바티깐은 북한에도 동방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해 유엔의 기본정신인 인권과 평화존중, 특히 종교의 자유존중에의 길로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며 남북간의 접촉을 증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 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북한에서의 종교의 자유회복이야말로 「정의ㆍ자유ㆍ신성불가침한 인권존중을 토대로 한통이」의 길을 여는 첫걸음이라고 본다. 이제 이것을 실현하기위해 성모님의 분부대로 간절히 기도하며 교황과 일치하여 온 교회의 역량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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