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으로 잘린 한반도의 남단 울산에 사는 나에게 국경이라는 개념은 참 낯설다. 북쪽의 국경은 국경이 아니라 아직은 넘을 수 없는 벽일뿐, 가장 가까운 일본에 가려해도 하늘이나 바다로 가야하는 우리에게 국경의 개념은 사실 출입국 수속장에서 느끼는 잠깐 동안의 불편함 정도이며 피부에 와 닿는 감각은 없다고 해야 옳다.
플란드 체스토코바의 세계 젊은이들의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로마에서 버스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알펜하이츠의 아름다운 산길을 달려 오스트리아 국경에 이르렀다. 여권을 보여주며 웃으니까 세련된 오스트리아의 국경경비병이 남쪽에서 왔느냐고 물으며 쉽게 우리를 통과시켜준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검문소와 별다른 점이 없었다. 그림같은 오스트리아들 지나 한참을 달려간 버스가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에 이르자 분위기가 묘하게달라졌다. 여권과 비자를 모땅 거둬 가더니 두어시간이 지나도록 버스를 세워둔 채 소식이없었다. 무겁고 관료적인 경비병들의 분위기가 버스 속까지 스며오는 것같았다. 겨우 통과허락을 받고 국경초소를 넘어서니, 너무나 고운 초록이어서 눈이 부시던 오스트리아의 산하는 재색 시멘트로 지은 초소 하나를 시아에 두고 슬프고 메마른 광야로 변했다. 참 큰 충격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나 할까? 사람이 지은 경계 하나 사이에 자연마저 달라져 버린 나라. 그리고 그 나라의 길에서 마주친 표정없는 슬픈 사람들. 체코슬로바키아의 황량한 여름벌판을 달리며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고 밤이 되어 도착한 폴란드 국경도 무겁기는 매한가지이다.
크라코프에서 아침을 맞은 우리의 눈에 폴란드는 물론 체코슬로바키아보다는 사뭇 나아 보였다. 그래도 동구에서 가장 신앙심이 깊은 나라이며, 가장 먼저 자유에로의 문을 연 교황님의 조국이므로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면 북한은 과연 어떠한 곳일까? 공산주의 국가 중에도 가장 폐쇄적인 곳이라면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을 넘은 우리에게는 보지 않아도 그곳과 또 거기 사는 사람들을 알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공산주의는 끝날수 밖에 없다. 슬픈 얼굴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데올로기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의 무너짐을 좀 더 분명히 볼수 있는 폴란드라는 나라에서 열린 세계 젊은이들의 모임은 더욱 더 값진것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스런 십자가」만이 우리가 높이 들어 올릴 깃발이고 유일한 정의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릴 제일 적합한 곳이니까. 2년후의 젊은이의 모임은 소련에서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산주의국가의 국경을 넘으며 또한 체스토코바로 향하는 순례길에서 나는 언젠가 북한의 국경을 통과하여 중국이나 소련으로 가게될 날도 있으리라는 작은 꿈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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