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톨릭신문 보도에 따르면(4월2일자) 현재 우리 교회 안에 신자들의 비공인(非公認) 단체가 전국규모 조직으로 7개나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 단체가 교회당국의 인준이나 허가도 없이 공공연하게 「천주교 ○○단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적 명칭만 볼 때 내용을 모르는 신자나 일반사회는 천주교를 대표하는 단체로 착각하게 된다.
가톨릭교회는 이래도 되느냐 하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한국교회 2백년 역사를 통해 이런 일은 없었고, 지금도 교회전통을 아는 신자라면 개탄과 통탄을 하리라 본다. 교회정신을 알고 하는 일인지 모르고 하는 일인지, 알고 했다면 이는 반교회적이고, 모르고 했다면 이제라도 깨달으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모르는 일이라면 우선 교회법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1, 신자단체의 목적규정(교회법 제298조)
『교회에는 봉헌생활회들과 사도직생활 단체들과는 다른 단체들이 있다. 이 단체들은 그리스도교 신자들 즉 성직자들이 평신도들 또는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함께 공동 노력함으로써 더 완전한 삶을 함양하거나, 공식예배나 또는 기타의 사도직사업 즉 복음화계획, 신심운동이나 자선사업 수행, 그리고 현세적 질서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불어 넣는 일에 힘쓴다』
2, 신자단체의 공적 사적 구분
『신자단체의 설립주체에 따라 교회권위가 설립한 것은 공립단체이고(교회법 제312조) 신자들이 자의적으로 설립할 때는 사립단체이다(제312조). 그러나 교회권위의 감독과 통할을 받아야 한다(323조1항)』
3, 신자단체의 교회명칭 사용규정 (교회법 제300조 )
『어떠한 단체라도 제312조의 규정에 따라 교회관할권자의 동의가 없는 한 「천주교」(가톨릭)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4, 사립단체에 대한 감독권
(교회법 제32조1항)
『비록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립단체가 제321조의 규정에 따라서 자율성을 가지지만 제305조 규정에 따라서 교회권위의 감독을 받으며 그 권위의 통할도 받는다』
5, 교회감독의 내용(교회법 제305조1항)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단체는 교회관할권자의 감독을 받는다. 교회관할권자는 그 단체에서 온전한 신앙과 도덕이 지켜지도록 보살피고 교회규정에 남용이 스며들지 않도록 감시할 소임이 있다. 따라서 교회권위는 법과 회칙의 규정에 따라 단체들을 시찰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단체들은 또한 아래의 법규정(2항)에 따라 교회권위의 통할을 받는다』※2항…『모든 종류의 단체는 성좌의 감독을 받는다. 교구단체와 아울러 교구내에서 활동하는 기타의 단체들도 교구직권자의 감독을 받는다』
탈법적 요소
현재 비공인 신자단체들이 특별히 유념해야 할 점을 교회법에 의해 살펴보자.
1, 교회관할권자의 감독과 통할을 받고자 하는가? 설립과 활동에 있어 교회권위와 상의하고 지시를 따르려 했는가?
2, 「천주교」 라는 명칭을 허가 없이 사용한 것은 명확한 위법이다. 그러한 위법을 정당화할 근거는 무엇인가?
3, 비공인 단체의 조직 목적은 주로 정의구현에 두고 있고 서로 공통된다. 정의구현의 방법과 한계는 교회당국과 상의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현세질서의 그리스도교 정신을 불어 넣는 일」 은 공동연구가 필요하지 않는가? 독주는 없었는가?
공동의 반성
이상과 같은 문제가 왜 생겼는지를 이해하지 않는다면 당사자들은 변론이나 반론을 할지도 모른다. 몇 가지 발생배경을 지적해보자.
1, 7개 단체들은 사회참여를 위한 단체들이다. 사회참여를 위해서는 반드시 반교회법적이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반면 그 원인의 일부는 교회당국에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공의회, 역대 교황님들, 교회법까지도 한결같이 교회는 사회정의에 투신해야 한다고만 강조하였을 뿐 구체적 사항에 맞는 방법이나 지침은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한국적 사회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사회정의 실천방법이 되는지 주교회의도 어느 교구장도 모든 신자에게 공통된 지침을 주지 못한 것이 큰 실책이다. 그리기 위해서는 한국적 상황과 실천방법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고 거기서 행동지침이 나왔어야 했다. 그래야만 전국 신자들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하나된 모습으로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보수다 진보다 하는 말도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주교단 자체가 보수 진보로 양분되어 그 모습이 노출되었던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고 본다. 정의평화위원회가 그 같은 연구의 기능을 담당했어야 했는데, 진보적 행동에만 급급했으니 기막힌 일이다. 정의 구현 사제단이 탄생한 것도 그런 분열의 소산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3, 지금 그렇다고 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계속 불법적인 단체를 만들어야 하겠는가? 「천주교 ○○단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임의로 교회를 팔아도 되는 것인가. 교회당국이 미온적이라 해서 교회권위를 무시해도 교회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지 냉철히 생각해볼 일이다. 이해는 하지만 용납은 되지 않는다. 교회에 대한 사랑과 일치를 위해 교회원칙에 복귀해야 한다고 본다.
4, 사회참여에는 목적설정에 구원가치가 우선돼야 하고, 실천방법은 복음적이고 교회적이라야 함에도 지금까지 받은 인상은 야권이나 운동권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5, 사회부조리 문제는 정치나 권력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도덕 문화 경제 교육 등 복합적인 문제로 보아야 바로 보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를 정치나 권력구조의 차원에서만 다루었으니 그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행동목표는 구조악과의 대결이었지 않는가? 따라서 인기나 이권에 치중하지 않았는가? 매년 2백만 명의 낙태문제, 도덕의 타락은 왜 소리가 없었는가?
결론
교회당국이나 탈법적인 단체들이나 교회 안에서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에 충실해야 하겠다. 그 충실성은 교회법과 그 정신에 맞추어야 한다. 만일 교회법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혼란 분열 반목 증오심에 빠져들고 만다.
끝으로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권위가 무시되고, 순종이 거부되는 정신풍토가 교회에까지 침투되고 있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이점에 사제들의 모범이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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