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거리가 많다는 것은 이미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누군가에게서 들은 기억이 난다. 육체적인 고통이나 난이외에도 고민스런 기억들이 언제나 어른들에게는 함께 한다는 점은 수수께끼와 같은 사실이다. 재재거리며 떠드는 아이들이 육년후엔 숙녀나 건장한 젊은이로 내앞에 서고 나는 그들앞에서 벗겨져 가는 이마를 감추느라 부산하다.
조그만 목소리로 「서로 사랑하겠느뇨」하고 물으면 씩씩한 목소리가 「예」하고 울려나온다. 신혼여행후 돌아와 인사할땐 만만한 친구하나 잃은 것 같은 느낌을 같은데 실상 만나는 폭이 적은 나에겐 세상이 좁다. 결혼해 떠난 젊은이들을 뜻하지 않은 장소, 기대하지 못한 시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전까지는 소꿈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집걱정, 물가걱정, 아기 걱정으로 꽤 심각하게 이야기를 할때 나는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 갇혀서 지나가는 무심한 뱃고동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가즌다.
할일없이 손가락 꺾는 소리를 즐기고 있을때 주택부금과 콩나물 가격, 시동생 학자금 등의 걱정소리는「오늘 점심값은 내가 내야겠는걸」하는 마음을 들게 한다. 헤어질때 섭섭한 눈치도 잠시 곧돌아서서 시장으로 향하는 그들을 보며 나만 홀로 걱정없는 사랑으로, 아이로 남은 느낌이다.
수많은 걱정거리가 둘러싸고 있음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함은 아직도 아이 티를 벗지 못해서 인가. 10여년전 처음 본당으로 부임하려 할때 아는 할머니께서 『신부님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애들이예요』하시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나는것은 또 어떤 이유에서 인지, 걱정거리를 만들지 못하면 어른이 되지 못함일까. 해서 하루는 신자들과 함께 장을 보러나갔다. 가보니 만원으로 살수있는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감자 몇개와 콩나물 조금을 들고 시내버스에 오르니 매일같이 나는 시내버스 이건만 그날따라 버스안에는 유난히 피곤해보이고 걱정거리를 짊어진 사람들만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런 보통의 사실을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농담과 유머를 즐기던 젊은이들을 몇년 사이에 애늙은이로 변하게 하는 세상이 곁에 가깝게 있음을 느끼지 못한것일까? 생각해보면 분명 세속에 몸담을 세속신부이지만 완전한 세속신부가 되지 못해서가 아닐까 한다.
장난하고 웃고 떠들던 기억만 남기던 점잖은 표정으로 아기와 부인을 소개할때 나는 속으로 말한다. 「그래 너는 어른이 되었구나. 나는 아이로 남아있는데 그것도 늦되는 아이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