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생일을 챙겨주셨던 국민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나면 거의 생일날을 기억하지도 못한 채 지내오고 있다. 차라리 영명축일날이나 서품기념일은 가톨릭 달력이나 수첩에 기록되어 있어서 더 잘 기억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어머님이나 동생들의 생일도 챙겨준 때가 없는 형편이다.
낯선 땅 미국은 놀랍게도 생일만큼은 서로 서로 축하해주고 기뻐하는 날이었다. 마침 한인성당 회장님이 생일이라며 저녁식사에 초대를 해주셨다. 한국이었더라면 아마도 틀림없이 염치없게도 빈손으로 털래털래 갔을 게 분명한다. 그러나 왠지 아이들까지도 생일선물을 조그맣게 잘 준비하는데 그냥 가기가 쑥스럽고 그렇다고 무얼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데 주위에서 꽃다발이면 어떻겠냐고 조언을 해주었다.
꽃을 사본 기억이 언제던가?…5년 전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날 식장에 나갔다가 그제서야 빈손으로 온 것이 민망해 떨이로 남은 꽃다발을 사준 적이 고작이었다. 꽃을 뒤적이며 모처럼 내 자신이 선물을 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묘했다. 여러차례 망설이다가 장미 몇 송이를 샀다. 주일날 미사 후에 회장님은 두 딸이 서로 장미를 자기 침대위에 놓겠다고 아우성이었다며 고마워하셨다.
며칠 전 꼬마아가씨가 성모당 입구라며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다. 잠시면 된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나갔더니 장미다발을 내밀고는『빨리 받으세요』하며 재촉했다. 『오늘 무슨 날인데…?』『날은 무슨 날 그냥 드리는 거지예. 사실은 오늘 제가 꽃집엘 갔다가 장미가 하도 예뻐서 샀는데 제일 처음엔 신부님 드릴려고 했던 게 아니지만 집에 가는 길에 신부님 드릴려고 샀지요』라고 했다.
무표정하게 꽃을 받아들었던 나는 꽃을 산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며 성모당을 가로 질러 오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성모당을 향하여 내려다보시는 성모님이『너는 한번 이라도 내게 꽃을 준 일이 있니?』하고 말씀하시는 하나를 골라 난간위에 올려놓고 꽃을 준 녀석을 위해 성모송 한번을 바쳤다.
꽃중의 꽃, 장미는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니던가? 나도 내 것을 주는 연습과 꽃을 사는 예쁜 마음을 더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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