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모든 사물을 그의 본질에 접근시키려는 인간의 욕구 본능의 소산이다. 또한 이름으로 하여 인간은 공통된 인식을 가질 수가 있다. 이름을 바탕으로 인간은 개체보존과 종족보존의 이중본능을 충족시킬 수 있고 자신의 무한한 정신세계를 펼쳐나갈 수 있으며 무엇인가를 궁리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낼수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3장 13~15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극적으로 표명하신다. 『나는 곧 나다』 (Ego Sum qui Sum). 당신의 유일무이성과 전능하심이 응축된 말씀이다. 당신은 여느 신들이 아니시고 살아계신 하느님으로서 인간을 보살펴 주시겠다는 확연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는 말씀이다.
창세기 2장 19절에서 야훼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들에게 아담이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이렇게 이름은 정체 규정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와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이름은 존재를 떠올릴수 있는 유일한 촉매제라 볼수 있다.
「개똥이」「쇠똥이」라는 투박한 이름을 통하여 튼튼하게 살아 달라는 부모의 애절한 염원, 딸만있는 집에 남자의 이름을 지어주면 아들을 낳을까 하는 부모의 타는 심정 등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요즘 예쁜 이름을 찾아가지곤 하는데 이점도 생각을 좀해 볼일이다. 부르기 좋다고 하여 우리 말에도 없는 단어를 발음대로 표기해도 되는건지. 이름이란 무릇 그것이 한자이든 한글이든 뜻이 풍부한 아름답고 상징적인 말로 지어져야 한다. 뜻글자를 사용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전통적 문화권에서 이름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막강한 세력으로 이해되고 평가되어 오고 있다. 그래서 작명소를 찾게되고 막연한 기대심으로 이름을 바꿔보기도 하는 것이다. 좋게 보아서는 훌륭하게 되고픈 자기 예언적 차원이라 여겨지지만 문제는 자신의 삶을 오로지 이름 하나에만 걸어보려는 딱하고 여린 요행심적인 삶의 태도라 하겠다. Happiness(행복)는 원래 happen에서 나온 말로서 행복은 우연히 외부에서 찾아온 운명의 힘이 아니라 올바르고 성실한 노력의 결심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자신의 운명은 책임성있게 스스로가 개척해 나가야할 과제를 품고 있는 것이다. 가슴두근거리며 작명소에서 이름을 멋지게 지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그 사람의 팔자가 바뀌는 것은아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을 공들여가며 가꾸어야 한다는 신앙인의 기본 생활 태도에 배치되는 것이며 나아가 운명론에 자신을 내맡겨 버리려는 오류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것이다. 인간은 가능적 존재로서 그리고 희망적 존재로서의 삶을 의연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우린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과연 하느님의 힘을 뛰는 심장으로 믿고 있는가 아니면 적당한 시기에 하느님을 도외시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항시 배제되어야할 골치아픈 문제는 기복신앙이 아닌가. 우린 좀더 넓어져야 되고 사색적이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하고 아까운 삶을 하느님의 뜻안에서 통찰하고 이해해야 한다.
구원역사속에서 작명은 육신의 인호(印號)와도 같아 신앙의 관점에서 족보도 살려가며 부모나 집안의 어른들이 자손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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