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굶어 도둑질 안할 사람 없다』는 속언이 옛말이 됐다. 열흘은 커녕 단 한끼를 굶어도 도둑질을 하는게 요즘의 세태이다. 굶기는커녕 배불리 먹고난 후에도 주전부리를 할양으로, 또는 휴가철 놀이비용 마련을 위해 앞뒤 생각없이 강도 절도 살인 등 끔찍한 범죄에 빠지는 일이 요즘 청소년범죄의 한 행태가 되고 있다. 지난 7일 동아일보 사회면 머리기사로 「10대범죄 어른 뺨친다」는 제목을 달고 온 청소년 기사가 있었는데 이를 읽으며 떠오른 것이 요즘 세상은 배부른 도둑판이란 생각이다.
이 기사의 줄거리는 80년이래 10년사이에 청소년범죄중 배가 고파 저지른 이른바「재산범」은 7.5%가 줄었는데 살인강도 강간 방화 등 강력범은 32.5%가 늘고 폭행 상해 공갈 협박 등 폭력범은 20.7%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바로 이 10년이 우리나라에서는 고도성장의 황금기이며 88서울올림픽이니, 세계12대교역국이니 하며 유사이래 처음 겪는 국력신장의 절정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90년대 문턱에 들어서면서는 관광자유화니 북방외교니 하면서 우리 한국인이 세계를 향해서 기를 펴고 때로는 기고만장 방약무인의 자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적 국지현상이라고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버릇없고 참을성없고 감정적인 싹수없는 아이들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교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담배를 꼰아무는 고등학교학생들, 방학때 유흥비 마련을 위해 식칼을 들고 강도로 돌변하는 청소년들, 본드나 성인용 히로뽕과 대마초 등의 향정신성 질환에 감염되어 성범죄를 저지르는 미성년자들, 이런 청소년 범죄들이 우리사회에 단반사로 그 수가 확대일로에 있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바라는 예절바르고 의지가 굳고 장래의 성취를 위해 오늘의 삶을 극기로써 헤쳐나가는 미래사회의 예비인력이 아니라 열락풍조에 젖어 쾌락이나 쫓고 그 쾌락을 위해서는 윤리니 도덕이니 사회규범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사회의 부담으로 존재하게된 것이다. 미래의 삶을 스스로의 힘의 축적에 의지하려하기 보다는 부모의 힘이나 사회적 보상에 의지하려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같은 청소년들의 타락상이 바로 우리사회의 현안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고 그 원인규명과 대책에 착안하게된것이 최근 우리사회의 한 경향인것은 사실이다. 정부가 체육청소년부를 만들어 10개년계획의 「한국청소년 기본계획」을 만들고 청소년 수련활동을 대학입시나 취업조건으로 활용하겠다고 나선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정부뿐아니라 많은 사회단체에서도 청소년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청소년선도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있다. 마치 청소년문제가 무슨 전염병인양 그 퇴치운동이 등불처럼 번지고 있고 정부나 이들 운동가들에 의해 우리 청소년들은 머지많아 얌전하고 장래성 있는 모범청소년으로 둔갑할듯이 착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무슨 기본계획이나 사회단체의 선도에 의해 해결되는 청소년문제가 아닌것이다. 또한 이같은 겉치레식 접근으로 우리의 청소년문제가 해결될것이라 믿는 사람들도 별반 없다. 청소년문제란 무슨 전염병도 아니고 사회운동에 표적이 될만한 문제도아니다. 청소년문제는 바로 우리사회가 잉태하고 출산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에 다름아니다. 우리사회가 병들었으므로 청소년들도 병들것이며 우리사회가 일그렀졌으므로 청소년들도 일그러져있는 것이다.
비근한 실례로 청소년들의 성범죄가 경악과 타기의 대상이 되고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른들의 세계가 성범죄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단체들이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중고등학생들은 물론 일부국민학생들까지 20~50%가 음란비디오를 봤다는 응답이다.
한마디로 그런 흉칙한 물건을 집에다 둔 어른들에게 책임이있고 그런 물건을 가지고 돈몇푼 벌겠다고 청소년이나 어른들을 마구잡이로 끌어들이는 부도덕한 엄부들에게 책임이 있다. 먹고 놀자판의 우리 사회의 타락풍조, 돈벌이면 못할짓이 없다는 황금만풍조가 청손년들을 타락의 길로 이끄는 주범이다.
따지고보면 청소년범죄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전세계적인 산업사회의 고질이며 자본주의체제 아래서의 불가항력의 병리이기도 하다. 유럽 선진국들이 이미 이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고 이웃 일본에서는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폭행의 수난을 당하는 사례가 적지않다.
문제는 어떻게하면 이런 청소년문제를 극소화하느냐에 있으며 이는 일차적으로 어른들 스스로가 청소년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길밖에 없다. 부모들이 문걸어 잠그고 음란비디오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근엄한 얼굴로 그런것은 보지말라고 훈계해봤자 그말을 귀기울여 들을 청소년은 없는것이다.
체육청소년부의 무슨 기본계획이나 사회단체들의 선도프로그램이 집단화 대형화의 청소년범죄를 막아줄수도 없다. 사회지도층들의 부패 타락상이 연일 신문방송에 소나기처럼 쏟아져나오는 세태에서는 정부는 물론 사회단체들의 설득력은 실효가 없다. 엊그제의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매도되고 청소년들이 믿고 따라야할 사회중간층들의 생활규범이 파괴된 속에서는 누구도 청소년들에게 설득력있게 호소할 사람이없는것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구조에서는 청소년선도를 과실있게 담당할 만한 곳은 교회나 종교단체밖에는 달리 찾을수 없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월사금 들려서 학교에 보내면 공부도 잘하고 품행도 단정한 모범생이 될것이라 기대하는게 우리네 학부모들의 생각이다. 또 빚어내어서라도 과외공부를 시키면 좋은 대학 갈것이라 믿는게 평균적 한국 부모들의 일반적 경향이기도 하다. 장차 그들중에는 제자식이 대화와 타협과 양보의 미덕보다는 경쟁과 독주와 승리를 쟁취하는 싸움꾼이 돼줄것을 바라는 어리석은 부모들이 많다.
학교는 더욱 청소년선도의 기능에서 크게 일탈해있다. 대량학습 대량지도의 학교교육은 이즈음에는 각급 입학시험의 강자만을 키우는 영수학원을 닮아가고 있다.
교사들의 주요관심사는 시험에 강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동물적인 강자를 키우는데 있고 자제와 겸양과 타협을 덕목으로 삼는 인격적 강자의 교육에 있지않다.
교회가 청소년선도를 맡아야 할 이유는 다른 어느기관, 어느단체도 이를 수행할 목적성과 정당성을 가진곳이 오늘의 우리 사회안에는 없기때문이다. 교회가 고아원 양로원을 맡아야하고 행려병자들의 외로운 영혼을 수렴해야하듯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방임된 청소년들을 맡아야한다.
청소년문제는 그처럼 심각하고 긴요한 문제가 되어있음을 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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