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흔히 과소비시대라고들한다.
대개의 가정에서 가구를 들여놓은 일에서부터 찬거리 시장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물건을 사는 쪽은 주부의 몫이다. 집안에서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입장이다보니 필요성이나 선택의 폭도 절로 주부가 정할수 밖에 없을 터이다. 사실 쇼핑은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꽉 짜인 가계에서 그 우선순위를 저울질해야 하는 경우에나, 나날이 뛰는 식품비를 걱정할라치면 짜증에 더해 곤혹을 느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문제가 들먹이게 되면 그 화를 주부들이 떠안는 꼴이다. 가전제품이나 옷가지, 그릇 따위를 사들인날에는 남편의 시큰둥해하는 얼굴을 살펴야 하고 사치 · 과소비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때면 스스로 반성의 여지를 찾아보고는 한다. 과연 우리나라의 많은 주부들이 자신의 향유를 위해서, 또는 과소비하는 재미로 산다고 말할 수있을까?
올해 나는 14년 만에 이사를 했다. 낡은 집을 허물고 다시 짓게 되어 잠시 셋방으로 나앉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사를 하는 일처럼 귀찮고 힘든 일이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이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하고 쓰지도 안쓰지도 못할 가재도구를 유감없이 버릴수있다는 점에선 그지없이 통쾌하기도 했다.
아마 이런 사실은 이사를 해본 주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사정이지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사짐을 꾸리고 옮기는 동안 나는 내가 그동안 미처 모르고 살았던 공동의 생활에서 도저히 짐작조차 해볼수없었던 어떤 억울함을 발견했다. 남편은 타성적으로 삶림살이를 챙기는 일이 아내의 몫이라는 듯 밀쳐두고 자기의 애지중지해 하는 것들만 싸기에 여념이없었다. 책은 그렇다 치고라도 오직 자기만의 관심사인 그림, 액자 토기, 수석 같은것만 우선으로 「자기유물」을 꾸린 후 나는 하나씩 짐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부엌에서, 방에서, 보관할 것과 버릴것들을 구분하면서 나는 서서히 이사에 대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14년 세월에 대한 허무한 가슴에남았다.
그렇다면 「나의 소유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자수나 편물도구? 화장대 서랍을 채운 조막한것들? 남대문 시장에서 급하게 사다 입은 옷가지들… 나에겐 정말 소중하고 애착가는 것을 찾을수가 없었다. 하다 못해 남들이 『어머 그 그릇 참 예쁘네』라고 말해 줄 만한 고급커피셑 하나라도 있었다면 내 허무한 마음에 위안이라도 되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참으로 귀한 잠언 하나를 얻어 갖기도 했다. 며칠 공허한 마음과 씨름하는 동안 내가 다음 하느님께로 갈때라면 차라리 지금 가진 것들도 실로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다짐까지도 해 본다. 유형의 물질보다 무형의 영적 재산을 늘리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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