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와 추녀끝에 매달린 물방울이 서쪽으로 기우는 햇빛에 반짝이는 모양이 아름다워 본일때가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동당거리는 소리에 비틀 피해서 있다는 사실을 곧잘 잊는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었다.
세월이 변해서 그런지 새로짓는 집에는 처마도 추녀도 없다. 아파트를 처음 보았을때 처마와 추녀가 보이지 않아서 상량도 하지않고 짓다만 집에 왜 사람들이 살고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요즘은 인색해져서 그런지 처마와 추녀를 필요로 하지않는다. 길가는 사람이 잠시 비를 피할수 있는 장소가 없어진 것이다.
어렸을때 비오는 날 처마밑에 동네꼬마들이 모여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누가 제일 잘 통과하는가하는 장난을 하며 놀다가 옷을 흠뻑적시고 부모님께 혼이났던 일들이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릴대 기억으론 비오는날도 재미있고 신나는 하루가 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비오는 날은 마음으로부터 심란한 날이되었다. 이슬비 오면 성당안에 홍수가 나는 성당에서 먹구름만 봐도 걱정이 앞서간다. 처마봐도 걱정이 앞서간다. 처마가 없어서 그런가? 그 튼튼해 보이는 건물이 비만 오면 엉망으로 변하는 모습은 나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전임신부의 각고의 노력과 신자들의 헌신으로 새로 지어진 이 성당도 비만오면 제의실에 홍수가 난다. 어릴때 처마밑에서 장난을 좋아했던 분은 잘 아시겠지만, 이슬비가 내려도 처마밑엔 왕비가 온다. 밖엔 분명 이슬비가 오는데 제의실엔 왕비가 온다. 복사 서는 꼬마들은 제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옹송거리며 서있고, 수십군데 받쳐는 그릇에선 희한한 악기소리가 울리고, 신자들은 내뒷통수를 바라본다. 옹송거리는 복사들에게 이깟 비쯤 상관없다는 식으로 들어가 제의를 차려입으면서 발레리나같은 동작을 되풀이한다. 부임하는 곳마다 비가 샐줄 알았으면 진작 발레나 배워둘걸 돌아다보니 복사들이 내모습이 우스운지 입을 가리고 있다. 「아래선 양반이 못되지」하고 한자리에 서면 이마와 제의위로 왕비가 적신다. 비올대마다 이짓을 되풀이하니 꼭 내가 연극배우가 된 느낌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남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심상치않다. 먹구름만 봐도 심란한 내마음이 바람때문에 더심란해졌다. 오늘 하루도 심란한 날이 될 것 같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