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때쯤으로 기억된다. 우리 과수원 뒷뜰에 삼촌네가 양계를 시작하였다. 구구 소리를 내며 모이를 먹는 모습은 장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병아리들은 사리 울타리를 해놓은 채소밭이나 탱자나무 담장 밑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놀곤했다. 그런데 아주 거세고 심술이 많은 장닭 한마리 있었다. 이놈은 곧잘 다른 닭들과 싸움질을 했고 벼슬을 쪼아 아프게 했다. 닭장에도 잘 들어가지 않아서 지게 작대기로 흩어야만 했다. 어느 날 뒷간에 가려고 닭들이 노는 곳을 지나가고 있는데 갑자기 거센 장닭이 푸드득 날아와 내 콧잔등을 찍었다. 내 우뚝한 코가 닭 벼슬처럼 보였을까? 죽는다고 고함을 질렀고 사실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를 많이 흘렸다. 지금도 안경을 벗고 보면 그 흉터가 뚜렷이 남아 있다. 신학교 친구들에게 닭에게 찍힌 이야기를 했다가 그만「용코」라는 별명을 얻고 말았다.
이런 닭과의 상극의 상연이 있는데도 내 식성은 조금도 구애를 받지 않았다. 삼계탕이나 육개장뿐 만 아니라 찜닭에 이르기까지 잘 먹어치웠다.
교구청으로 들어와 근무를 하면서 피정지도를 가끔씩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루가복음 22장 68절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3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묵상을 준비하다가 내게도 베드로처럼 닭과 묘한 관계가 있음을 생각해 냈다.
사도 베드로는 간혹 아침 일찍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스승을 배반했던 일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뜻에서 서양에서는 가끔씩 종탑이나 지붕 위에 닭의 형상을 세운다고 한다.
닭이 울면 새벽이 온다. 이것은 죄악과 어둠의 죽음이 가고 광명과 생명의 부활이 옴을 알린다는 뜻이 된다.
나는 요즈음 들어 식탁에 오르는 닭요리를 먹으면서 베드로 사도께서 지금 여기 오시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고 공상을 하게 된다.
시내 곳곳에 켄터키 치킨이나 양념통닭 집을 보실텐데 그곳을 지날 때『어이쿠! 스승님 저 닭을 보니 불충했던 옛일이 떠오릅니다』하고 말하시지 않을까!
그리고 보니 나도 닭에게 코를 깬 기억이 있으니 피장파장이다.
닭이 내 코를 쪼았지만 사실은 하늘에 계신 분이『내가 너의 콧대를 찍어 표시해 두었으니 그리 알아라』하는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된다.
정녕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밀지는 못하니 부름에 응함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이라고 하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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