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신자들의 그림자를 배웅하다보면 성당마당이 갑자기 커져보인다. 커보이는 성당 마당에는 알수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배어있는듯 하다.
방의 불을 모두 끄고 녹음기의 소리를 아주 작게 하고 자리에 앉는다. 창문 가득히 담겨진 달빛에 문득 눈길이 가면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환청을 듣는다.
밖으로 나가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온세상 가득히 발빛이 차있다.
달빛은 마치 내영혼을 씻기려는듯, 샤워기처럼 그렇게 내려온다. 10월의 밤. 피부엔 소름이 끼치는데 이마에 땀이 배이는 것은 마음에 있는 죄스러움 때문이다.
처음 부임하는 날부터 신자들은 내가 차를 갖지못한 것을 보고 자기들의 책임인것 처럼 죄송스러워 했다.거리가 좀 멀거나 할때 가정방문을 청하면서 「자동차도 없으신데」하면서 손을 비비며 죄스러워한다. 『버스타고 가지요』하며 웃고는「버스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돌아오는 시내버스는 퇴근하는 사람, 장보고 오는 사람들도 만원이다. 요행히 차지한 내자리 주위엔, 아기를 안은 엄마, 장바구니든 아주머니, 큰책가방을 든 학생 등 「내가 이만큼 나이 먹었으니 자리 좀 비 켜주지 않겠어」하는 표정으로 내얼굴을 바라보며 서있는 사람들도 꽉 찬다. 누구에게 양보해야하나 30여분 서서가는 것이 더좋을까 생각하다가 아무에게도 양보하지 못했다.
이런 죄스러움이 달빛을 견디지 못하게 한다. 같이 죄스러워할 사람은 보이지않고 내 이름을 부른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63층 꼭대기 난간에 서있는것 처럼 그렇게 어지럽고 현기증나는 순간이다. 달빛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어느때 보다 추해보이고, 욕심스런 양볼이 더욱 뚜렷이 그려지는데, 달빛은 여전히 샤워기의 물줄기처럼 내리고, 내마음은 차거운 물줄기를 피하는 동작을 한다.
10월의 밤공기가 소름을 돋게해도 영혼의 뜀뛰기때문에 이마엔 땀이 맺힌다. 달빛을 마주보기 부끄러워 눈길을 밑으로 돌리면, 더욱 높이 솟은 달 덕분에 더 땅딸해진 그림자가 고집스러워 보인다.
시내버스에서 눈길 둘데를 찾지못한 두리번거림을 달빛아래서 계속하며, 달빛이 주는 그림자를 밟으며 쫓기듯 방안으로 들어온다. 내그림자를 밟지않고 달그림자를 밟을 그때까지는 달빛은 나를 씻기려해서 부끄럽게 만들것 같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최병석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 부터는 서울 고덕동본당 구재회(베드로)씨가 수고해주시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