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평신도 지도자들 가운데 평신도를 가리켜「병신도」라고 부르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듣기에 별로 기분 좋은 말은 아니나, 어쩌다 이런말까지 나오게 됐는지 우리 교회의 현실, 평신도의 모습을 한번쯤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것같다.
우리 교회의 신자들이 중산층화되었다는 것은 이제 아마 거의 정설처럼 된 것 같다.
최근 실시된 가톨릭신문사의 조사에 따르면 신자들의 학력만 보아도 70%이상이 고졸이상이어서 우리나라 평균 수준을 훨씬 앞서있고, 경제적으로도 우리나라 평균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신앙교육수준은 어떠한가? 기껏해야 예비교육기간, 그것도 6개월도 채 안되는 교리교육과정을 마친 이들이 대다수이고 더욱이 세례 입교 후의 교육이라고 해야 아마 주일 미사 강론이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의 받는 유일한 교육 기회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충분치 않은 강좌이나마 신자들의 절반 정도는 아예 참석해본 일도 없고 주일미사 참여률은 60%정도에 머물고 있다면 신자들의 신앙교육정도는 미루어 짐작할만 한 것이다.
교회의 신문, 잡지, 신앙서적은 제대로 읽고 있는가? 위의 조사에 따르면 성서를 한 주일에 한번이라도 읽는 신자는 40%도 채 안되고, 교회의 정기 간행물을 하나도 구독하지 않는 신자가 절반이나 되며, 제2차 바티깐공의회의 문헌이나 교황의 회칙을 어느정도라도 읽은 신자가 20%도 안된다니 이것이 과연 사실인지 그대로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공부 안하는 평신도, 그리하여 사회에서의 학력은 고졸이상이요 경제력도 얼마쯤 갖추고 있는데 교회의 학력은 유치원생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면, 이런 불균형은 정상인의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런 기형아가 제대로 자식구실하기 어렵고 이련 기형아를 둔 부모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도 없으리라.
아무리 신자가 수적으로 눈부시게 늘어난다해도 이런 기형으로 제구실 못하는 신자들뿐이라면 교회가 제 구실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회가 제구실하려면 신자들의 숫자 못지않게, 아니, 숫자보다 중요한 것이 신자들의 질이 아니던가?
『복잡하고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평신도교령 28항), 단순한 신앙만 가지고서는, 효과적으로 평신도의 질을 높일 수 없는 만큼, 평신도가 제대로 자신의 소명과 사명을 다할 수 없는 것 이다.
흔히 평신도 교육이라고 하면 평신도의 교회내적 참여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한 교회자신의 복음화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구원의 보편적 성사』로 세상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평신도는 그 신분의 세속성으로 말미암아 성직자, 수도자와 친교를 이루며 세상 안에 교회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평신도 교육은 바로 현대 세계 안에서의 선교적 현존을 위한 것이기에 하는 것이다. 평신도의 교회내적 참여가 세상을 위한 선교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 교육은 평신도들이 교회 공동체에 안주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일종의『성직주의』에 빠지거나 부활하신 주님의 증거자가 되어야 할 자신의 교회적 신원과 소명을 망각하는 일종의『세속주의』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세상 안에서의 선교적 현존을 위한 교육, 그것은 바로 우리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을 구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온갖 사회악과 불의의 근원이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없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평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 살면서 이 불신앙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여 복음화에 효과적으로 투신하도록 교육함은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도 긴요한 일이다.
마치 우리의 신앙 선조들이 스스로 교리를 탐구하여 교회를 일으키고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근대화의 초석을 다져 놓았듯이, 복음화 3백년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한국 교회가 민족구원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신자 교육보다 시급한 과제는 없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열 높은 나라도 없는데 어떻게 교회의 교육열은 이렇게 저조한지 안타깝다. 누구 말로는 신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제대로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의 부모들이 모든 것을 희생하여 자식의 교육을 최우선적으로 뒷바라지하듯, 어머니인 교회는 자녀들의 교육을 최우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가? 교사인 교회는 아동교육에서 성인교육에 이르기까지, 평신도들의 다양한 능력과 환경과 신분에 알맞은 교육을 베푸는 교육자의 구실을 충실히 다하고 있는가? 본당은 효과적인 교육의 장이 되고 있는가? 평신도 교육자들은 충실히 양성되고 있는가?
교육은 무엇보다도 자기 교육이다. 그러므로 모든 평신도들이 무엇보다도 자신을 스승이신 하느님께 열고 모든 교육자료를 이용하여『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고』(갈라 4、19) 성장하도록 하는 참교육을 효과적으로 해내도록 성직자, 수도자 모두가 친교 속에 서로 도와야 하지 않을까?
평신도가 병신도가 된다면, 이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의 공동책임이 아닌가?
한홍순
◇서울 청담동본당ㆍ토마스 아퀴나스
◇전 한국외국어대 상경대학장
◇현 교황청 평신도위원회 위원
한국외국어대상경대 경제학과교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