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비암리」라는 곳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곳은 의정부에서도 몇 시간이나 버스로 달려야하는 곳으로 나는 새벽에 일찍 집을 나와 종로5가에서 의정부행 버스를 타고 의정부에서 다시 비암리행 버스로 갈아타야만 했다. 그 털털거리는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거의 정오쯤되었다. 그곳에 다니기를 여러달. 어떤때는 그 침놓는 할아버지께서 한마디 말씀도 없이 집을 비우셔서 속수무책이었고 저녁때까지 기다려 겨우 침을 맞히고 돌아오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느날은 날이 저물고 그나마 다니던 버스도 끊겨 마냥 서울을 향해 걸어야만 했다. 정신없이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길을 잃어 캄캄한 산중을 헤매기 까지 하였다. 그런데도 무서운줄 몰랐고 오직 마음은 둘째 아이에게만 있었다.
지친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할때면 통행금지 시간이었고 사정을 들은 방범대원은 나의 손등에 통과 도장을 찍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자식을 고쳐 보겠다는 굳은 집념이 나를 그렇게 버티게 해주었던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오랜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한번만 더」하며 기를 쓰던 나의 의지력도 실의속에 조금씩 무너져 갔다.
모든 생활에 의욕을 잃었고 남편과 큰애가 있음에도 오직 나와 둘째 뿐인것 같은 느낌에 젖었다.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갈등과 동요속에 무작정 애를 업고서 집을 나서는 때도 있었다.
둘이 어디로 가서 죽어 버린다면 나머지 사람들의 짐을 덜어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마음을 먹고 보니 오히려 서글픔만 더했고 서러움에 복받쳐 울고또 울었다. 어느날 그러한 심경속에 눈물을 떨어 뜨리며 발길 닿는대로 그저 무작정 걸어가고 있는데 내 앞에 문득 성당이 다가왔고 미소띤 성모상이 나를 눈짓해 부르고 있었다.이제껏 교회를 다녀본 일도 없었고 할머니 손에 이끌려 몇번 절에 가 본것이 고작이었던 나는 그 성모상을 보고 나를 키워주시던 할머니 다음으로 인자한 모습을 느낄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난생 처음 그곳에서 무엇인지모를 기도를 드렸고 정신없이 성모님께 애원하며 간구했다. 이렇게하여 주님은 나를 당신의 자녀로 이끌어 주셨고 성모님을 만나게 되는 은혜를 주셨다. 그때가 부활절 영세식이 끝난 후였고 다음교리가 시작될때까지는 공백기간이었으나 나는 무조건 성서와 기도서를 받쳐들고 미사에 참여했다.
이러한 나를 보고 남편은 쓸데없는 짓 그만두라고 역정을 냈고 시댁의 노여움 또한 대단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시어머니님은 시골에 계셨으므로 아시는것은 오직 무당 뿐이셨고 남편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자를 고쳐 준다는 무당을 믿고 열심히 무당집을 다녔으니 다른것은 안중에 없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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