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피정때였다. 식후에는 분위기가 딱딱하지 않도록 소화제를 공급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바탕 우스개를 하고나면 서로 빨리 친해지고 서먹하질 않아서 좋다. 여느때처럼 시범 소화제를 하고 나니 부제 한사람이 나와서 소화제를 했다.
어느날 봉이 김선달이가 쇠고길 무척 먹고 싶었으나 수중에 돈은 없고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사달할 수도 없어 궁리끝에 꾀를 냈다. 육수간에 간 김선달은 주인에게 소불알을 한대접 삶아 달라고해서 소금에 찍어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나서 입을 싹 닦고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어나 가자 주인은 선달 뒤틀 따라가며『양반 나으리! 고기 값을 주셔야지요?』라고 했다. 선달은 정색을 하며『주인장! 마-암소잡은 요랑하이소』하고 총총 걸음으로 사라졌다.
시장이 지척인데도 마음먹고 나가기가 쉽질 않아서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그분은 심부름 값으로 비가 오는 날 커피를 사달라는 제법 낭만적인 요구를 했다.
출근때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사무실에 손님이 오시고 회의를 다녀오고 하는 사이에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는 것을 눈치 채기라도 하듯이 전화가 왔다. 심부름값을 받아야 겠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마-암소 잡은 요랑하이소』하고 말해버렸다.『뭐라꼬 예!』하고 다그치는 말에 아차 설명이 긴데 싶어 말꼬리를 흐리며 혼잣말을 했다고 얼버무렸다. 돌이켜보면 단순한 약속 하나에도 이처럼 대충 넘어 가는 습관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게도 여전했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엄청난 은종을 손으로 다 헤아릴 수도 없지만 돌려 드려야할 빚과 감사에 대하여는『마-, 암소 잡은 요랑하이소』를 연발하고 있다. 어쩌다 한번이면 애교스럽겠지만 너무 남발하는 것은 고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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