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을을 독서와 사색의 계절이라 한다. 그것은 한용운의 말대로, 자연과 인사가 독서에 적의하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 몇해 사이 매스컴에 비친 우리나라 가을은 우리나라 가을은 관광과 행락의 계절이다. 단풍구경을 나무랄 수는 없고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상하며 계절의 변화 가운데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참뜻을 음미하는 나들이라면 그런 자기성찰석 명상과는 거리가 먼 들뜸과 과소비와 무질서한 행태에 있다.
그 법석거리던 행락시즌도 한고비 지나고 어느덧 아침저녁 싸늘한 바람이 한해의 저물어감을 소연히 느끼게 한다. 땅으로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가랑잎들 이 자연의 순리를 일깨워 주며 인생의 무상함을 돌이켜보게 한다. 추야장(秋夜長) 마음의 양식을 찾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볼만도 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대체로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우리 가톨릭 신자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은 특히 영적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취미와 효용에 따라 단순히 새로운 지식이나 교양 혹은 선인들의 교훈을 익히기 위한 독서가 아니다. 물론 그런 일반적 독서도 중요하지만, 육체 안에서의 영혼과도 같은 역할을 세속에서 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신앙과 영성을 굳건하고 가멸지게 하는 영적 독서를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진리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밝혀 주고 옹호하며 현대의 갖가지 문제 해결에 적응하기 위함이요, 마치 누룩과도 같이 내부로부터 세계 복음화에 이바지하며 믿음과 바람과 삶에 찬 실생활의 증거로써 이웃하게 그리스도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교회헌장 31함).
실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근래 이 사회에서 과연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 자괴와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잇따라 벌어진 대구의 나이트클럽 방화사건, 여의도의 자동차폭주 살인사건 등 인간성의 상실을 가늠케하는 암울한 사건들을 놓고 이땅의 수백 수천만의 종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명 대학의 교수님들이 사회적 양심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챔임을 저버리고 입학시험을 미끼로 거액의 돈을 집어삼킨 비리,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 어둠속에서 관행화되고 있는 유사한 비리들을 매도하기 전에 우리 종교인들은 자신도 거기에 관여해 왔거나 방조해온 사실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오늘, 모든 종교인은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엄숙히 자문하며 철저한 자기성찰을 해야 할 것이다. 타종교는 차치하고 우리 자신부터 반성해보자.
첫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산엄화 과정에서 공리(功利)에 치우치는 세태에 영함하여 개인주의적인 경향을 띠면서 이기적인 기복신앙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둘째,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서 교회의 외형적 성장과 함께 중산층화한 많은 신자들이 소외계층과 그 고통을 같이 나누기보다 얼마큼의 물질적 도움만 주고「의인연(義人然)하는」 선민적 자기만족에 빠지고 있다. 셋째, 그로 말미암아,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예언자적 현실판단을 하지 못하고, 현실 타개보다 현실 안주에 급급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들이 제기되고 중대한 오류들이 만연되어 종교와 윤리 질서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이런 잘못된 점들을 바로잡아 주고 그리스도인다운 현실판단을 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뒷받침해 주는 지렛대가영적 독서다.
근래 우리나라 가톨릭 출판물들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괄목할 만한 발전과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들의 직업상의 열성을 불러일으키고,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깨우쳐 주고 사회생활에 요구되는 성실성, 정의감, 진실성, 친절, 용기 등을 북돋우어 주는 책들도 많다. 특히 신심서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수난은 엎어두고 그분의 영광에만 동참하려는 안일한 신앙자세를 반성하게 한다. 사실 우리의 신앙고백은 많은 경우 구두선(口頭禪)에 그치고 있다. 언필칭 신ㆍ망ㆍ애 삼덕을 입에 담으면서도 그 부단한 실천으로만 가능한 영적 생활에는 힘쓰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이중인격이요 위선이다. 우리는 영적 독서를 통해 이런 위선을 벗어던지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 자신을「알몸」으로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자기 성찰이요, 이때 비로소 예언자적 현실판단의 영적 안목도 얻게 된다. 현세 사물의 참된 의의와 가치를 그 자체로서나 또는 인간 목적에 관련시켜서 올바로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평신도교령 4항).
그러나 우리 가톨릭 신자들중 많은이는 이런 독소를 거북살스럽게 여긴다. 재미가 없고 딱딱하며 어렵다고 한다. 이런 신자들은 대개 성경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다. 영적 독서는 성경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읽든지 끝에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기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친밀하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건하게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참고서적과 신심서들을 찾게 마련이고, 그런 책들에서 어느정도 깨침을 얻으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이전보다 더 가까이 그리스도께도 나아가고자 한다.
내년에 선거 열풍이 불게 되면 아마 출판계는 침체의 늪에 빠질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더 멀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 신자는 오히려 그럴 때일수록 눈으로 잘 보고 입으로 잘 말하고 마음으로 깊이 깨닫게 독서 삼도(三到)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 그리고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비판할 수 있는 예언자적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실현되도록 책에서 지식이 아니라 신앙을 읽는 일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