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우리보다 앞서 가신 임들을 기리는 위령성월이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이 왠지 자꾸만 가슴에 와닿는 계절이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드는 불청객 모양으로 죽음이 내 생명의 문을 두드리리라. 그날이 오면 나는 무엇을 담아서 내 생명의 광주리를 주님께 바칠 것인지 두렵기만 하다. 그래서 내면에 깔린 나의 무질서한 감정들을 정리해 미움과 원망의 시선을 보냈던 모든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문득, 위령성령을 접하게 되니 두달전 작고하신 김덕재(치릴로) 신부님이 생각난다. 추운 성탄판공성사날 고백소에서 오들오들 떠시면서 열심히 성사를 주시던 김신부님. 모든 신자들의 구령을 위해 혼신을 다해 사랑을 전해주시던 그 열심하시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가슴 저며오는 후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는 만나뵐 수 없는 신부님.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내게도 예고없이 찾아올 죽음을 늘 준비하는 자세를 살아가리라 마음먹고, 오늘은 내가 살아있는 자의 목소리로 기도하지만 내일은 나 역시 어느 산 중턱 한 모퉁이에 자리하게 됨을 묵상해본다.
이제, 내 남은 시간들을 주님의 작은 도구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항상 기쁜 마음으로 늘 깨어있는 삶의 자세로,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할 줄 아는 인생이 되고자 주님께 은총을 구한다. 『노인은 오래 살았다고 해서 영예를 누리는 것이 아니며 인생은 산 햇수로 재는 것이 아니다.
현명이 곧 백발이고 티없는 생활이 노년기의 원숙한 결실이다. 그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지혜4, 8∼10)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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