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의 가장 뜨거운 화제는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일가의 주식이동과 관련한 추징세금 1천3백61억원일것이다. 몇백만원, 고작 몇천만원의 돈으로 사람팔자가 뒤바뀌기 일쑤인 서민들의 숫자감각으로는 그 질량을 가늠하기도 어려운 이 엄청난 액수의 추징세금의 결말이 어떻게 날것인지 그 귀추가 자못 궁금하다. 그러나 더욱 궁금한것은 무엇때문에 세계재벌 랭킹에까지 오르내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인 현대가 정부의 철퇴의 표적이 됐는가 하는 것이다. 그만큼 국세청의 현대에 대한 세무조사에는 그 동기에 대한 갖가지 억측이 나돌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정부와 재벌, 이 양자의 관계가 유독 사이좋기로 이름난것이 우리나라이다. 국민들 소비자들을 따돌리고, 권커니 잣커니, 상부상조하며 소근대며 지내는것이 우리의 정부와 재벌간의 밀월관계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들 양자간의 관계에 틈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국민들도 눈치채게됨 것이다. 재벌쪽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의 오류를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고 최근에는 재벌총수들이 내놓고 정부와의 관계에 일정한 선을 긋는 발언을 자주 함을 듣게 됐다. 쥐죽은듯이 죽어살던 며느리가 느닷없이 시어머니에게 큰소리로 대드는 격이다. 국제수지가 형편없는 하강선을 보이고 있고 물가에다 생산성하락에 우리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끊이지 않는 판국이니 기우는 살림에 싸움 잘날 없다고 정부와 재벌과의 싸움은 당연히 벌어지게된 것인지도 모른다.
정부와 재벌싸움뿐이 아니다. 며칠전 대낮에 쇼핑나온 주부를 납치하여 20여시간이나 끌고 다니던 흉막범이 범행동기를 말하면서 고급승용차를 끌고다니며 허영과 사치를 일삼는 부유층을 보면 분노를 느껴 이들에게 돈을 빼앗아 무슨 가게를 내려했다고 했다. 부유층을 터는것이 하나도 죄가 될게 없다는 그의 말투에서 서민층의 부유층에 대한, 이를테면 계층간의 갈등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실감할수 있었다.
정부와 기업간의 갈등을 위시해서 근로자와 사용자간의 갈등, 소비자와 공급자, 교수와 학생, 가진자와 문산자간의 상호불신과 미움의 감정이 점점 깊어가고 있는것이 오늘의 우리 공동체적 현실이다. 여기에다 동서와 남북의 뿌리깊은 역사적갈등이 가세하면 오늘의 우리사회환경은 갖가지 갈등의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여 갈등의 난마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이러한 시작도 끝도 알수 없는 갈등구조가 오늘의 우리 공동체가 좌초와 난파의 위기를 맞고있는 주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같은 갈등의 난마(亂麻)를 풀어야할 사람은 누구인가. 이의 전제조건이 사회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지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 할때 우선 정치권의 지도자들을 꼽을 수 있다. 정당이나 정부의 관료들은 국민들로 부터 국가관리의 대권을 위암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위난에 처했을때 이를 타개할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을 이끌 일차적 챔임을 질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권은 위임받은 권한에 비해 경륜도 없고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지도 못하고 있다. 6공출범 이후의 정치권은 거듭되는 이기주의적 파쟁과 도덕적 타락상으로 인하여 국민들에게 신망을 잃고 있으며 누구도 그들이 제시하는 국난극복의 힘과 지혜의 방안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 대학교수를 위시한 지식인집단을 기대할수 있지만 이들 역시 30년 가까이 계속된 권위주의정치의 억압속에서 대중적 권위를 상실했다. 대학안에서 학생들을 설득할 힘이 없는것이 오늘의 대학교수이며 아무리 강변과 췌사를 늘어놔도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것이 오늘의 언론이다. 논리와 수사(修辭)가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대중을 감동시키는것은 진실이며 이 진실은 도덕적 순결에서 잉태한다. 교수가 진리의 수호자로서 권위를 되찾고 언론이 대중을 감동시킬수 잇는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지난날의 굴종과 도덕적 타락의 악연(惡緣)을 끊는 도덕적 결단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결국 갈등의 난마(亂麻)를 푸는 실마리를 찾는 일을 종교가 말아야할 숙명이란 것으로 말하고 싶다. 정치권력에 유린 되고 돈에 오염되기로는 종교도 정치권이나 기업 지식인 집단과 다를바 없다. 불교 스님들이 법당 앞마당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일이나 교회의 교직자가 횡령죄로 교도소를 가는 일은 기업인들이 경제의 논리대신 정치적논리로 경영에 임하는 것과 똑같은 모순이다. 돈에 의해 종교적 가치의 척도가 바뀌고 돈에 의해 구원의 논리가 혼돈되는 교회는 사회구원이나 인간구원의 능력을 잃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차피 종교는 화해와 해방이 궁극의 목표이기 때문에 세속의 갈등에 대한 해소의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 자본의 횡포를 미워하는 근로자의 마음을 경영인이 풀기 어렵고, 교수를 불신하는 학생들의 심리적 갈등을 교수자신이 해소하기는 어렵다. 또 정부를 불신하는 기업, 동을 질시하고 서툴 미워하는 동서의 갈등의 해소는 동도 서도 정부도 감당키 어렵다. 교회만이 유일하게 정치권력이나 상업주의의 이해(利害)갈등에서 해방될 수 있는 논리를 신앙으로 가졌기 때문에 오늘의 공동체의 구조적 갈등의 난마를 푸는 일에 도전할 수 있다. 스님의 염불이나 목사의 설교, 그리고 신부의 강론이 머지않아 대중들의 마음속에 엉켜있는 증오와 갈들을 풀어주는 화해의 종소리로 들려 올때가 와야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