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을 하다 보니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들로부터 또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의 직장을 따라 수원에 처음 왔을때는 아는 이도 없었고, 약국을 찾는 이들도 약사와 손님의 딱딱한 관계를 벗어 나지 못하는 것 같아 예전의 약국 생활이 더욱 간절히 생각나곤 했다.
그러나 이곳에 자리잡은 지도 벌써 4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아플 때만 아니라 시장을 오며가며 들러보고, 안부를 묻곤 한다. 처음에 경상도 사투리를 잘 못알아 듣던 사람들도 이제는 『약사님 사투리가 참 듣기 좋다』면서 웃곤 하는 모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을 느끼곤 한다. 단골손님이 많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단골손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에겐 박대 못할 단골손님이 한분 계신다. 팔순이 가까운 할머니시다. 처음 할머니가 약국을 찾았을 때, 약을 사신 후 나의 손을 잡고 『며느리가 밥을 주지 않아 배가 고파 죽겠다』고 하소연 했다. 며칠만에 한번씩 약국에 들리는 할머니는 박카스 같은 드링크를 사신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배가 고프다는 얘기를 했고, 나는 꼭 내가 할머니를 굶기는 것 같은 죄송한 마음으로 드링크에 영양제 한알을 드리곤 했다.
그리고 나의 손님 중에 아주 차분한 아주머니 한분이 계시는데 자주 오지 않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 좋아 내 기억에 오래 남는 그런 분이었다.
그런데 많은 날들이 지나간 후 알고 보니 밥을 주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며느리는 바로 그 아주머니였다. 우연히 그 아주머니와 얘기하다 그것을 알고 놀라는 나를 보고 그 분은 『또 우리 어머님이 여기 오셔서 며느리가 밥을 주지 않아 배가 고파 죽겠다고 했죠?』하고 웃는다.
할머니는 가는 곳마다 배가 고프다는 말을 했고, 그 소리를 이웃을 통해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아주머니도 속이 상해 죽을 뻔 했다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어머님을 언제 굶겼냐고 물어보기도 많이 했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어머님의 배고픔은 사랑의 배고픔, 소외의 배고픔 그리고 인생에 대한 배고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어머님께 좀더 잘해 드리지 못하는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 키로 했단다.
나는 그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얼마나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모른다. 내주위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랑에 목말라 하고 무관심에 배고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봤다.
요즈음도 그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약국 문을 들어선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 점심 잡수셨어요? 배고프지 않으세요?』하고 먼저 여쭈어 본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에에잉」하고 고개를 흔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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