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함께」라는 책자의 서두에「죽은 신자」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는데 이미 죽어 있으나 우리 가운데 살아 있는 사람들 이라는 것이다.
난 그와 반대로 살아 있으면서도 죽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그분들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평화 그 자체였고 사랑의 결정체 바로 그것이었다. 사회와 격리 될 수 밖에 없는 병을 갖고도 또 신체 어느한 부분도 성한 곳이 없는 몸으로 그분들은 주님을 찬미하고 있었다.
손가락은 뭉그러졌고 눈은 있지만 앞을 볼 수가 없거나 움푹꺼져 형태만 있고 코, 입 그 어느 것 하나 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없었다.
겨우 엄지손가락 하나 붙어있는 사람은 그 사이에 먹을 것을 끼워서 먹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성가 소리는 우렁찼고 기도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 기도를 들으면서 난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열기가 용솟음침을 느꼈다. 자꾸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우는 것마저도 그분들에게 사치스럽게 느껴질 것만 같은 가책 때문에 난 자꾸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릴 위해 노래를 불러 주시고 또 한마디라도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그들. 난 그분들과 손을 마주잡고, 우리가 드린 아이스크림을 잡숫게 했고 턱밑으로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닦아주면서 너무나 가슴 아파 나도 모르게 주르르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하느님의 계획은 어디 있기에 저런 고통을 주시는지,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당신 말씀 한마디로 깨끗하게 만드시지 않으셨던가. 그런데 왜 저분들에게 당신 말씀으로 낫게해 주시지 않으시는지. 저분들의 울부짖음이 아직도 당신께 닿지 않았는지요?
난 처음으로 깊은 원망의 기도를 드렸다. 한가지의 청을 드리라는 그 곳 수녀님의 말씀이 계셨지만 난 너무 많은 청을 드렸다. 저 환우들을 완치 시켜주시고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과 나눌 수 있게 해 주시고, 우리 모두 이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게 해 주십사 하고,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드렸다.
손가락이 없는 뭉그러진 손에 호미를 묶어 가꾸어 놓은 정원, 손가락이 없어 묵주를 굴릴 수가 없어 목에 걸고 문질러 한알씩 넘기며 기도하고 목발을 손목에 걸고서도 매일 미사 다니시는 그분들. 은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시는 그분들. 세상의 영광은 그분들을 외면하고 냉대ㆍ멸시하고 격리시켰지만 이후 하느님 나라의 영광은 이분들의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하느님을 위해서 죽음의 삶을 살고 있는 이분들. 다시 만나자고 우리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분들을 뒤로 우린 소록도를 떠나왔다. 이제까지의 어떤 성지순례보다도 어떤 피정보다도 더 깊은 감명과 가슴 저림을 안고서 더 열심히 기도 생활하며 봉사ㆍ희생하며 사랑을 나누겠다고,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분들을 생각하며 참고 견디겠다고 다짐하면서 힘차게 묵주알을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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