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련에 있는 동안, 가장 불편한것 가운데 하나는 물건을 사는 일이었다.
물건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는 물건을 사는 절차가 더 어려웠다.
가령 인형을 하나 산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네처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값을 치르면 되는데 소련에서는 물건을 고른 후 점원으로부터 전표를 받아야 한다. 그 전표를 들고 별도의 계산대로 가서 돈을 치루고, 다시 영수증을 얻어다 맨처음의 점원에게 내민다. 그러면 점원은 영수증을 살펴본 후 물건을 포장해서 내준다.
이처럼 복잡한 절차를 밟다보니 물건을 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고 뒤에 줄서있는 사람은 여간 짜증이 나는게 아니다.
더욱이 점원이나 많으면 그런대로 되겠는데「모스크바」의「크레믈린궁」가까이에 있는 외국인 면세점의 경우, 한 코너에 1명씩만 배치돼 있으니 관광객이 밀어닥치면 정신을 못차린다. 그래서 무얼 좀 사려고 하던 사람도 포기하고 만다.
또 물건을 샀다가 몇개 더 추가를 하고 싶다던지, 또는 색깔이 마음에 안들어 바꾸려 한다던지 하는 생각은 말아야 한다. 그 만큼 절차가 복잡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소련에서는 물건을 팔고도 점원으로 부터「고맙다」는 말을 듣기가 참 어렵다. 영어로「댕큐!」라던지 소련어로「쓰바시보우!」라는 인사말을 몇 번 들었는지 셀 수 있을 정도다.
상점에서만이 아니라 호텔, 공항 어디든 마찬가지다.
이쪽에서 표나는 선물을 주기까지는 그들은 언제나「러시아인」특유의 무뚝뚝한 표정, 어두은 얼굴이다.
왜 그럴까? 왜 그들의 언어에서「감사하다」는 말을 찾을 수 없을까?
그것은 무엇 보다 현실적으로는 모든 것이 자기것이 아닌 국유(國有)ㆍ국궁(國宮)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떻게하든 그저 근무시간만 때우면 되는 것이다. 상점 점원, 호텔 종업원까지 모두 국가에서 임명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자리는 보장돼있고 손님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서 자신에게 좋은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며 고객이 와서 물건 사고 안사고는 크게 관여할 바가 아닌 것이다.
공산주의、즉「함께 나누어 갖는 것」의 허상이 결국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강요된 나눔」이기 때문이다.
「복음정신에 따른 사랑의 나눔」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신론적 논리에서 출발한 공산주의의 유물사관(唯物史觀)은 결국은 이런 경직된 사회, 하느님은 물론 이웃에게 감사를 모르는 사회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강요된「나눔」의 사회가 얼마나 생명력과 응집력이 없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눔」은 하느님의 복음 정신、곧「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는 정신」에서 비롯되어야지, 복음이 배제되고 정치체제로서 강요된 나눔일 때 모든 공산국가에서 나타나는 증후군(症候群), 즉 경제적인 것과 함께 정신적인 궁핍함, 다양한 개성과 창의가 죽고 획일화로 지배되는 정체(停滯)만이 남는 것이리라.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의 소련을 이렇게 만드는 데는 앞에서 말한 무신론적 통치이념, 그리하여 발병(發病)한 정신적 타락일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크레믈린에 있는 웅장한 성당을 방문했을 때 절실히 느꼈다.
황금빛 찬란한 지붕과 그리스정교회 특유의 건물양식, 그리고 아름다운 내부의 벽화같은 것이 그대로 잘 보관돼 있는 성당은 그러나 관광객의 구경거리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과거 제정(帝政)러시아시절, 교회가 합법화돼 톨스토이ㆍ차이코프스키 등 러시아정신을 이끌어 가던 위대한 시대를 회상하며 성당을 구경하고 있는데 내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을 때 가슴에 와닿은 어떤 뜨거운 것을 느꼈다.
성모님 그림이었다. 성모님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웬지 근심스런 얼굴같이 보였다.
그리고 거룩한 성전이 이렇게 구경거리로 전락해버린데 대해 슬퍼하는 모습 같았다.
사실 그 거룩한 곳에는 하느님을 욕되게하는 사람들, 살인자들, 이교도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등등, 온갖 사람들이 불경스런 마음으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성모님 얼굴이 기쁨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소련이 이 지경이 돼버린 원인이 있다. 하느님을 외면한 타락、복음을 외면한 분배(나눔), 그래서 하느님께 대한 감사, 이웃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그 오만스런「바벨탑」같은 국가가 돼버린 것이다.
일찍이 우리 가톨릭은 소련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교황님을 방문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소련 전역에 폐쇄됐던 교회문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있다. 우리들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크레믈린 성당의 성모님 얼굴은『아니다. 아직도 멀었다. 소련의 회개를 위해 더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렸다.
『한국에서 온 아들아,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한국 교회가 되어라. 부자와 지체높은 사람만 환영받는 교회가 되지말라. 입으로만 기도하고 사랑을 모르는 죽은 신앙을 갖지 말라! 이것이 소련이 주는 교훈이다』
변평섭
◇영국 톰슨신문연구소 수료
◇대전일보 논설위원ㆍ편집국장 역임
◇現대전교구 평협회장ㆍ중도일보 편집국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