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시골에서부터 무당을 데리고 오시기까지 했다. 그날 나는 시어머니와 크게 다투었지만 어머니의 뜻을 꺽지는 못했다.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씀드렸고 만약 이일로 둘째가 걸어다니게 된다면 그때는 무조건 어머니뜻에 순종하며 시키는대로 다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날은 밤새도록 무당의 푸닥거리가 있었고 그후로도 시어머님은 여러가지 부적으로 예방을 하시는 것 같았다. 한번은 시동생을 통하여 부적을 보내오셨다. 시동생은 부적을 내보이며 시어머니께서 나모르게 어디에 숨겨 놓으라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빼앗아 시동생이 보는 앞에서 태워 버렸다. 그동안 쌓였던 거림칙한 마음도 같이 태워져 날라가 버리는것 같아 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곤 본대로 어머니께 그대로 말씀드려 달라고 했다.
그후로 시어머니의 역정과 질책은 대단하였고 어머니의 역정이 더하면 할수록 나도 교리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여 교리공부 시작한지 한달쯤 후에는 남편의 이해를 구하여 함께 교리공부를 하게되는 기쁨을 가졌다.
그해 75년 성모승천 대축일에 남편과 나 그리고 큰애 작은애 이렇게 우리가족 모두가 구원을 받는 은혜를 입었다. 비록 둘째로 인하여 언제나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주님의 품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어 견뎌 나갈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직장을 대전으로 옮긴다는 것이었다. 어쩔수 없이 남편을 따라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친척 언니와 어느 수녀님의 주선으로 S재활원에 둘째를 입원 시켰다. 그곳에서 치료를 받아 빨리 나아지길 기대하며 남의 손에 성치도 않은 자식을 맡겨놓고 돌아서 대전으로 내려가려니 가슴은 미어지고 또다시 찢기어 졌다.
기차안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대전역에 도착했을때 눈이 부어서 보이질 않았고 주위도 아랑곳 없이 계속 흐느꼈다. 마중나온 남편을 보고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달래다 못한 남편은『빨리 고치는것이 좋지 매일 그상태로 끼고만 있으면 무슨 진전이 있냐』며 화를 내었다. 깊숙히 패인 아픔의 상처와 고통의 눈물로 둘째 생각을 하며 하루 하루를 지냈고 일주일에 한번씩 있는 면회의 기다림은 너무나 길기만 했다.
그러나 그 긴 기다림 후의 면회는 좋아지고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있는 아들을 보게되는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결국 두달이 채 못되어 아이는 모든 관절이 오그라 들었고 온몸까지 뒤틀리는 경련을 일으키게 되어 차마 눈뜨고 못볼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지 않을수 없었다.
『어떻게든 고쳐 보려던 것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 합니다』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뒤로하면서 집으로 데리고 왔으나 이미 온몸이 오그라는 상태여서 도저히 업을 수도 없었다. 집에 돌아온후 아이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경을 헤맸고 그때마다 남편과 나는 병원을 내집 드나들듯 하였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