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설악산엘 다녀온 적이 있다. 이틀 예정이었지만 눈으로 인해 발이 묶여버렸다. 밀린 일이 걱정이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눈딱감고 휴가를 즐기는 마음으로 긴장을 풀었다. 어른들께서 걱정할 것 같아 연락은 드렸지만 마음이 편하질 못해 창밖을 내다보고 있으려니까 무슨 뜻인지『못한다고 못한다고』를 연발하고는 일행들이 배를 잡고 웃는 것이었다. 한참을 웃고나더니 이렇게 말해 주었다.
선교사로 오신 외국신부님이 강론을 하시는데『우리 교우들과 함께 소풍을 갔습니다. 사회자가 노래를 하라고 여교우를 지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교우는 못한다고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노래를 했습니다. 교우들은 잘했다고 잘했다고 앵콜을 불렀습니다. 그 다음에는 저에게 노래를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산토끼야 산토끼야 너는 어디로 가느냐」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앵콜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사회자가 어떤 교우를 지명하자 못하겠다고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교우들은 하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또 못한다고 못한다고 했습니다. 교우들은 하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우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교우들은 박수를 치며 잘했다고 잘했다고 앵콜을 불렀습니다』라고 했다며 억양까지 흉내를 내는 바람에 다시한번 배꼽을 쥐고 웃고 말았다.
사실 외국에 나가 있어보면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짜증스럽고 대인공포증이 전화만 와도 가슴이 철렁한 것을 경험한 나로서는 서툰 우리말에도 무척 애착을 느끼며 들으려 한다. 더구나 외국말로 강론을 할 정도라면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못한다고 못한다고…, 잘한다고 잘한다고』하는 낱말의 되풀이가 풍겨주는 단순함과 친근함이 재미있어 잊어버리고 있을 만하면 한번씩 말꼬리마다 두마디를 되풀이하는 화법을 사용해 웃음바다가 되곤했다.
지나친 겸손이 담긴 우리의 사양지심이 외국신부님에게는 몹시도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지나치면 안 된다는 단순한 결과가 여운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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