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건네오셔서 당신의 뜻을 밝혀주신 계시종교이다. 그분은 교회로(성서작가들) 하여금 신자생활의 필요에 따라 당신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말씀을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듣고 실천하여 구원의 혜택을 받을수 있게 하셨다. 성서의 작성자가 교회이기 때문에 권위있는 해설자도 교회당국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지 않고 그르침 없이 알아듣고 가르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하여 성서를 편찬했다. 구두전승만으로는 말씀의 진실성을 보존하기 어렵다.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듣지 않으면 하느님을 곡해하고 교회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교회는 자기 존재의 원칙인 계시된 말씀으로 향상 되돌아가서 자기의 본질을 새롭게 파악하여 죄스러운 이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끊임없이 정화시켜 나가야 한다. 성서에 계시된 말씀은「날카로운 쌍날칼」과 같아서 칼날 같이 자르는 힘, 즉 심판(묵시19, 15 : 참조 : 이사11, 4)의 힘을 가지고 양면에 날이 선칼로써 사람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힘을 지닌다(묵시1, 16 : 참조 : 히브4, 12~18).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의향을 꿰뚫어 교회 안에 있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거스러는 가르침이나 생활을 버리고 그분께 충실하도록 해주신다(참조 : 에페4, 17). 교회가 세말까지 살아있으면서 죄스러운 이 세상을 복음화하는 구원은 성사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쌍날칼 같은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십여년전부터 한국천주교회 안에서도 신앙의 원천인 계시된 말씀을 연구하는 모임들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 성서연구모임이 말씀에 굶주린 신자들의 허기를 나름대로 채워주고 있는것같다. 성서주일을 맞아 성서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태도를 돌이켜 보면서 성서연구에 대한 몇가지 반성과 발전을 위한 제의를 하고자 한다.
1, 우리의 신앙은 성서에 계시된 말씀 위에 뿌리박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자가 제 나름대로 그릇된 하느님의 모습을 만들어 참된 하느님인듯이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비그리스도교적인 문화권에서 태어나서 그런 문화권이 가르치는 신개념(神槪念)을 가지고서 성서의 하느님을 상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의 신앙이 샤만을 숭배하는 원시종교의 틀을 벗아나지 모사고 기복(祈福)위주의 신앙관을 가지는 것같다. 성서에 계시된 하느님을 배워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서를 매일 읽는 신자들의 수가 아직도 소수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우리가 성서를 읽어 알게된 하느님에 관한 지식이 그분을 체험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하다. 『주님, 주님하는 사람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7, 21). 하느님은 우리가 이론적인 지식만으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처험해야 알아뵈올수 있는 분이시다. 여러가지 체험담이 성서연구모임에서 소개된다.
2,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 형제 자매들이 함께 성서를 연구하고 기도하는 그 가운데 예수님이 현존하신다(마태18, 19-20). 하느님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과 우리 각자의 인격적인 관계는 우리가 하느님과 공동체 단위로 만날때 꽃을 피운다. 그래서 각 가정에 성체를 모시는 마음으로 늘 성서를 상위에 모시고 온가족이 말씀과 더불어 살때 성가정이 됨을 명심해야 하겠다. 또한 혼자 성서를 읽기보다 성서연구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 더 많은 은총을 받는 계기가 된다. 그 모임에서 말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전문가들의 해설을 들을 기회를 가지게 될것이다.
3, 사람들이 성서에 계시된 주님을 뵈올수 있도록 성서를 보급하는 것이 성서주일이 제정된 뜻이다. 성서가 가장 좋은 선물이다. 솔선수법으로 성서읽기를 보급하는 것은 신앙을 고백하는 한방법이 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에 관해 고백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에 관해 고백할것이다』(마태10, 32)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천주교 신자들은 성서를 모른다고 말하는 기독교 신자들이 비난이 오늘도 들려 오지 않는가?
4, 성서작자가 의도한 뜻을 정확하게 해설하는 것이 신자들로 하여금 참된 하느님을 만나는데 필수적이다. 성서의 한귀절을 두고서 해설이 각기 다르면 신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란 말인가? 친구지간에 각자가 서로를 잘못 알고 있으면 우정이 제대로 성립되지 않듯이 우리가 하느님을 바로알지 못하면 하느님과 참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또한 우리의 신앙이 계시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말 위에 입각하게 된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가지 가지의 틀린 성서해설들을 피하기 위해 주교의 교도권 밑에서 성서 전문가들의 공동작업과 그들을 중심으로 하는 체계적인 지도자 교육이 시급하다.
5, 성서연구를 제대로 하기 위해 성서본문을 정확하게 옮긴 번역서가 있어야 한다. 「공동번역성서」의 오역을 대체하기 위해나온「이백주년 기념 신약성서」가 공동번역 성서보다는 성서의 원문을 훨씬 더 정확하게 번역한것이다. 그러나 이 새 번역 역시 많은 오역과 틀린 해설을 담고 있다. 정작 새 번역보다 본문의 정확한 뜻을 밝히는 주해서를 먼저 내고 나서 그 다음본문 번역을 시도했어야 한다. 이백주년 성서의 번역을 무시한 채 또 새 번역을 시도하고 있단다. 이백주년 성서의 번역이 송두리째 틀린것이 아닐진대 그 오역을 함께 고쳐 나가는것이 오역의 악순환을 피하는 방법이 아닐까? 말씀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성서주일의 뜻은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그분을 만나 뵈옵자는데에 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수 있는 방법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데 있다. 성서의 말씀안에 현존하시는 주께서 형제 자매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으로모여 말씀을 함께 연구하는 모임 가운데 직접 임하신다. 우리 모두가 말씀의 봉사자가 될때 말씀이 우리를 성화 시키고 사회악으로 썩어가는 우리의 사회를 정화하실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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