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죄송합니다. 모두 제 탓이예요』
가슴을 억누르는 죄책감에 못이겨 나는 성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꼭 고해성사를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말 가슴이 아팠고 이 죄의 식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성당 안에 홀로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죄」를 더듬었다. 눈물이 가슴 가득히 밀려왔다.
『너는 나한테 솔직하지 못한것 같아 뭘 항상 숨기고 있어, 내가 그동안 널 잘못 봤어』
4년 동안 친하게 지내온 가까운 친구 안나에게 이렇게 차가운 말을 던졌다. 그래도 나는 꽤 오래동안 괴로와하고 생각한 끝에 그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가혹하게 말했다.
안나는 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인 지금까지 사귀어 온 친구다. 그는 머리가 좋고, 털털하고, 세심하지 못한 친구였다. 얼굴도 예뻤다. 하지만, 전혀 꾸밈이 없었다. 그 점이 더욱 좋았다. 나는 치장하고 멋내는 것을 싫어하는 성미다. 단솔하고 깨끗한 것은 좋지만, 필요 이상으로 머리에 신경쓰거나 얼굴 등에 신경쓰는 것을 참나쁘게 생각했다. 그래도 요즘음에는 그런 나의 생각이 많이 누그러지고 아이들에 대한 이해심도 넓어져서 너그러운 편이다. 그런데 나랑 가장 잘 통하고, 나랑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던 바로 그 친구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머리에 유난히 신경을 쓰는 것이다.
안나는 원래 곱슬머리라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를 통해서 그가 파마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앞머리를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 매만졌다. 나는 어떤 일종의 배신감같은 것을 느꼈다. 항상 그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마주 대하기가 싫었고 나의 그에 대한 태도는 점점 차가워져만 갔다. 우리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점차로 높아져 갔다. 이래서는 안되지 하고 그벽을 부수려고도 했지만, 너무나도 두꺼워서 깨지지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괴로와 했고 그도 나를 조금씩 피하는 것 같았다. 마음 속의 이야기를 편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서로를 그리워했다.
그렇게 지내던중 어느날, 우리집에 같이 가게 되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그 차가운 말을 했다. 그는 못 알아듣는 척 하였으나 내가 더 이상 애기하지 않자, 그도 말이 없었다. 안나는 나를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나를 피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자 나는 안나가 나를 보도록 가까이 다가서서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그 큰 눈에서 커다란 물방울이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눈물이었다. 그녀가 내 앞에서 최초로 보이는 슬픔이었다. 순간 나는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송곳으로 찌르는듯 했다. 그의 눈물이 내 심장을 꿰뚫는것 같았다. 내가 괜히 이렇게 말했구나 하는 후회가 뼈에 사무쳤다. 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도, 지울 수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안나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울음을 삼키려는 노력은 이미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다가가 위로 하지도 못하고 입술을 깨물며 침통하게 그를 바라볼 뿐 이었다. 『흐흑…그래, 난 국어를 못 하니까.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를거야. 하지만…흐흑…?』
가슴이 저렸다.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애기하고 싶었으나, 그는 그냥 떠나려 했다.
『잠깐만!』
현관에서 안나를 붙잡고 애기했다. 결코 짧지않은 시간 동안 그대로 벽에 기대어 서서, 나를 보면 눈물이 더 나오려 하는지 그는 나를 보지 않고 계속 문쪽에 시선을 두었다. 대화를 하는동안 내가 잘못 생각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나는 그저 안나일 뿐이었다. 단지 집안에서 언니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멋을 낼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천적인 무딘감각때문에 오해받을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무딘 것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너도 노력하고 나도 노력해야겠지. 나는 너와 가까이 있을수록 네가 그런것에 대해 너무 큰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았어. 너에게 말하는 것이 두려웠어. 아, 모르겠다. 좀더 정리하고 노력한 후에 얘기하자.』
이렇게 끝맺고 안나는 집을 나섰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쩔줄을 몰랐다.
『미안해. 너를 울린 건 내 잘못이었어.』
안나는 부은 눈으로 힘없이 인사하고 등을 돌렸다. 그 뒷모습이 무척이나 서글펐다. 나는 울고싶은 기분이었으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성사를 보았다.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방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해소에서 나왔다. 저녁 미사가 시작되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더욱 빛나보였다.
『전능하신 천주와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탓이로소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나는 진정으로「내 탓이오」를 외쳤다. 내 가슴을 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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