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우주는 깊이 모를 아름다움의 심연이다. 사람은 한껏 우주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서 그것을 음미하고 즐기고 기뻐하며 행복해야 할 일이다. 실은 저 광활한 우주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다 아름답다. 하늘의 뭇 별들도 아름답고 은하계도 아름답고 태양도 아름답고 달도 아름답고, 지구도 아름답고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물도 바다도 물도 하늘도 아름답고, 여러 나라들도 아름답고 우리 나라도 아름답고, 나의 고향산천도 아름답고 내가 지금살고 있는 서울의 동네도 아름답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은 여러 아름다움을 찾아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리기가 쉽다.
사람이 모든 아름다움을 다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모든 아름다움을 다 견디어 낼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잘못하다 욕심을 부리면 큰일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단박에 죽어버릴 수도 있다. 모세는 하느님의 뒷모습을、뒷모습 중에서도 겨우 땅에 엎디어 스쳐지나가는 하느님의 도포자락을 보았을 뿐이지만 천지가 진동하는 바람에 견디기 어려운 무서움을 겪어야만 했다. 만약에 사람이 빛자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똑바로 직시한다면 견딜 수 있을리가 없다.
사람의 문화가 고여가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서 오늘날의 사람들은 옛사람들이 생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아름다움의 영역을 열어나가고 있다. 물론 시간과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서 또는 문명의 발달에 따라서 잃게 되는 것도 있다. 달에 사람의 발자취가 닿게 되고、가서 태고의 먼지가 쌓인 사실대로의 달 표면을 봄으로써 계수나무의 상상은 사라지게 됐다.과학의 발달이 꿈의 영역을 몰아낸 보기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이 우리에게서 아름다움과 꿈의 영역을 일방적으로 빼앗아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빼앗아가는 대신에 주는 것도 있다.
얼마 전에「보이저 2호」가 찍어서 보내온 목성과 토성과 해왕성의 사진은 뭐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으로 차있었다.
특히 그중에서도、엷은 청색으로 덮여 있으며、역시 엷은 검은색의 무늬와 흰색 줄무늬가 섞여 있는、태양에서 장장 45억킬로나 떨어져 있다는 해왕성의 사진은 역시 형용하기 어려운 꿈과 신비에 차 있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옛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마 때가 되면 머지않아 해왕성보다도 더 멀리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 둘레의 공전주기가 2백50년이나 된다는 명왕성의 모습도 사진으로 보게 될 것이다.
지난번 KBS의 파업 때 교양을 위한 프로가 많이 방영되었는데, 그 중에서 극광이라고도 하는 오오로라에 관한 프로가 아마 내가 지금까지 본 것중에서도 가장 도취되어 본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태양에서 불어오는 하전입자가 지구의 대기라는 방어망에 부딪혀 튕겨나가 생기는 빛의 예술이 오오로라다」하는 텔레비전의 해설이 무척 아름다운 시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연달아 펼쳐지는 오오로라의 그 천변만화하는 형상은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서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오오로라는 엄청 정밀한 자연법칙에 따라서 생기는 천체현상이었다. 그러나 오오로라가 지구의 자기를 따라 두갈래로 갈라져서 남극과 북극의 높은 하늘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쌍무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다시없이 웅혼한 우주의 시였다. 오오로라의 원리를 알아낸 것은 과학의 힘이었다. 내가 방안에 앉아서 오오로라를 볼 수 있는 것도 과학의 힘이었다. 나는 오오로라를 보면서 과학과 시의 행복한 일치를 보았다.
오오로라가 아름답고, 해왕성이 아름답게 보인다 하여 우리가 그러한 현상이 일고 그러한 것이 있는 우주 공간에 가보기를 바란다면 크게 잘못일 것이다. 우주 공간 자체는 공기도 없으며, 기온이 영하에서 훨씬 내려가는 저온이며、우주선이나 감마선 따위 인체에 유해한 방사선이 득실거리고 있으며, 또 언제 운석이란 바위 덩어리가 날아 올는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그런 곳에 가보면, 위험할 뿐이며 정작 오오로라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렇게 아름다운 현상이 보인다.
사람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기 위해서는 알맞는 거리가 필요하다. 숲을 숲으로 보기 위해서는 나무들에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의 강도가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은 가까이에서 감상해도 위험할 것이 없다. 난초나 수석이나 또는 마음에 드는 작은 조각품 따위는 가까이에서 어루만질 수 있다. 그러나 우주적인 아름다움은 우주적인 거리가 필요하다. 염려할 것은 없다. 우리와 우주 사이에는 우주라는 넓고 넓은 공간이 우리를 위해서 보호막의 구실을 해 주니까.
거리 역시 하느님의 자비이다. 거리는 사람을 위해서 위험을 없애주고 너무 독한 것을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무서운 중량을 싣고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트럭이나 화물열차도 멀리서 보면 장난감처럼 재미있고 예쁘다.
아름다움은 마치 불처럼 좋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한 것이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사람은 동시에 모험적이어야 하며 겸허해야 한다. 모험은 용감한 창조적 행위요 겸허는 미적거리이다.
우주의 아름다움은 끝도 없이 넓고 끝도 없이 깊고 끝도 없이 높다.
찬미 받을 지어다 조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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