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본당 신부님이 신학교 지망생들을 모아 놓고 질문을 했다. 『지금 성당에 불이 났다고 하자、어떻게 하겠느냐?』
신학교를 가겠다는 학생들에게 교리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그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는 대신 이런 엉뚱한 질문을 했으니 대답이 구구할 수밖에 없었다. 불을 빨리 끄기 위해서 이래야 한다느니 저래야 한다느니 야단들인데 한 학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감실을 지키겠습니다』본당 신부님이 기대했던 대답은 바로 그것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성체를 보호하겠다는 정신이 바로 사제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빅뉴스(Big news)
그런데 정말로 성당에 불이 났다. 작년 10월 10일에 전주 전동성당에 불이 난 것이다. 화재감식결과 누전은 아니라고 했다. 실화(失火)나 방화의 가능성이 큰데 마침 불이나는 순간에 성당에서 뛰어나오는 수상한 사람들을 목격한 증인들이 있었다. 거기다 전동성당이 그동안 민주화를 촉구하는 기도모임과 시민모임의 장(場)으로 크게 활용되어 왔다는 사실-특히 군에 의해 테러를 당한 박창신 신부 사건을 규명하라고 촉구하는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었음-등이 성당화재가 테러일 것이라는 우려 쪽으로 강하게 기울도록 하였다.
그 다음날 이었던가. 런던에서 방송하는 ITN 월드뉴스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을 규탄하며 이의 시정을 촉구한 천주교회의 성당을 방화한 사건이 화재 현장그림과 함께 그곳 주교님의 인터뷰를 크게 보도하였다.
성당방화、그것은 세계가 주시할 큰 사건이요, 온세상이 공노(共怒)할 사건인 것이다.
다행히 전동성당의 화재는 제단과 감실을 삼켜버리지 않고 진화되었으나, 전주교구 신앙의 요람이요 순교성지인 한국 최초의 순교자와 호남의 사도 유항검 그리고 초대 전주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순교한 곳에 세원진 성당(사적288호)의 재건에는 1억이 넘는 막대한 경비가 필요한 형편이다.
이어지는 성당방화
그런데 1월 5일에 또다시 군산 오룡동성당에서 불이나 성당을 다 태워버렸다. 이번에는 제단과 감실까지 삼켜버리고 말았다.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새까만 잿더미를 바라보며 자괴(自愧)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화재감식 결과는 누전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화재가 발생한 시각에 성당 아래층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무얼 부수는 소리와 우당탕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가보니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는 사실과、불이 처음난 곳으로 판명된 제구실(祭具室) 바닥이 어떤 강력한 인화물질의 발화로 철저하게 타버렸다는 사실(그곳에는 분명、어떤 인화물질도 보관되어 있지 않았음)과 이틀후 비가 오자 창문턱에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들어오고 나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난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또 하나의 성당방화、또 하나의 테러 앞에서 분노에 뗄게 하였다.
더구나 오룡동성당 역시 군산 시민과 신자들의 민주의식을 북돋아주는 장(場)이 되어 왔음을 상기할 때 소위「우익테러」가 내 앞에 정체를 드러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자、그러면 다음 차례는 어디냐?
총력으로 막아야
더이상 이대로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제3의 성당방화를 막아야한다. 그게 어떤 개인의 정신병적 소치가 아닌 소위 우익의 집단적 테러라면 교회나 신자뿐아리라 모든 국민과 정부가 나서서 사건 해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동성당에 가서 화마가 할퀴고 간 천정을 올려다 보고 오룡동성당에 가서 형체만 새까맣게 남고 예수님의 몸은 재도 남지않고 사라진 제단의 십자가를 바라다 보았다.
무릇 예술가들은 성당 천정에 하느님의 거룩함을 구상화하고 제단의 십자고상(十字苦像)에 하느님의 사랑을 극대화하여 표현한다.
성당방화라는 이 엄청난 사건을 통해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하시는 메시지를、우리는 하느님 거룩함의 표현인 성당천정과 큰 사랑의 표현인 제단의 십자가-지금은 오직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으로 남아 죄와 악의 본모습인 무서움만을 보여주는-에서 알게 된다.
첫째는 정정당당하게 얼굴을 맞대고 싸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은 더욱 무섭고 불행해진다. 숨어서 상대방을 치는 싸움、폭력에 의지하는 싸움은 비굴하며 거기에는 승리 아닌 패배만 있을 뿐이다.
둘째는 화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악과 화해하라는 말은 아니다. 악이 화해의 대상이 아닌 싸움의 대상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악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들이 싸움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제거하려는 것은 죄악이지 죄인이 아니다. 이 싸움에서「너 죽고 나 살자」가 아닌「죄악은 패배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가 우리의 목표이다. 너와 내가 함께 살면서 정의가 죄악을 무찌르게 하는 것이 참된 화해인 것이다.
셋째로 성당방화를 막는 일에 모두가 나서라는 것이다. 이는 화재를 당한 두 본당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였는지 전주교구나 한국교회의 공식적인 태도 표명이 없으니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제3의 성당방화를 막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의 연대성을 보여주자.
지금까지 관계기관이 사건 해결을 위해 보여준 태도를 주시할 필요기 있다. 그것은「사건해결」을 위한 태도가 아니다. 그들이 사건을「은폐」하지 않고「해결」하도록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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