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바실리오)가 3학년이 된 80년 여름방학 때였다.
막내가 장난감 색안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둘째가 그것을 갖고 싶다고 떼를쓰며 졸랐다.
막내를 달래 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보다못한 큰애가 색안경을 사온다며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큰애가 나간지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고 전화를 받던 내동생의 목소리가 심싱치 않게 떨리고 있었다.
『언니 큰일났어 성훈이가 사고로 병원에…』
말이 채끊기기도 전에 무섭게 전화기를 낚어챘다. 전화내용은『서부병원 응급실로 오세요』이 한마디였고 순간 나는 호흡이 정지되는 무서운 충격을 받았다.
마침 휴일이라 집에 있던 남편은 쏜살같이 뛰어 나갔고 나도 그뒤를 따라 달렸다.
응급실 앞에 도착하니 먼저 온 남편이 나를 쳐다보며『죽지는 않았어』라고 한마디 할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응급실 문을 밀고 들어가보니 하얀 시트로 온몸을 감싸놓은채 수술중이었고 피로 범벅이 된 신발과 청바지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어이없게도 바지 뒷 주머니엔 한쪽이 깨어져나간 장난감 색안경이 꽂혀 있었다. 참으로 기막힌 노릇이었다. 머리와 얼굴을 수십바늘 꿰메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입원실로 옮겨졌다. 집으로 입원준비물을 챙기러온 나는 둘째를 보는 순간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시간의 흐름속에 상처는 잘 아물어 개학이 되기전 퇴원을 했다. 나는 하느님께 그간의 나의 자만을 용서 빌었다.
그러나 몇해가 지나면서 둘째에게 시달림받는 내몸과 마음은 무디어 갔고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는게 이게뭔가』하는 회의감에 빠져들었고 모든것이 슬프기만 했다.
성경공부를 같이 하던 자매님이『사비나는 주님께서 큰 그릇으로 쓰시려고 하시나봐』하며 위로해 주었으나 본인이 당해보지 않으면 쉽게 그런말 못한다며『간장종지로 쓰셔도 좋으니 이제는 밤에 잠이라도 편이 잘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못마땅한 말을 했다.
지금도 둘째는 단 두 세시간을 내리자지 못한다. 밤낮없이 둘째에게 시달여야 했고 죽지 못해사는 삶이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느냐?』고 누가 묻기라도 하면『아직은 명줄이 달려있으니 별수없이 살고 있죠』하고 대답 하곤 했는데, 그같이 어리석은 나는드디어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셋째가 1학년이 된 86년 6월이었다. 학교에 다녀와 피아노 학원에 간다며 나간 막내가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승용차에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연락을 받았으나 온몸이 사정없이 떨렸고 아무것도 볼수도 들을수도 없었으며 도대체 발이 떨어지질 않아서 한 발자욱도 결을수가 없었다. 나는 주위 사람에게 이끌려 간신히 병원까지 갔다.
불행중 다행이라고해야 할까? 응급실에서 막내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살아있음을 알았다. 울던 막내는 검사를 위해 주사를 맞고 축 늘어진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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