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어느 부모인들 자식의 행복을 원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타향살이의 외로움도 마다않고 물려받은 전답도 쉽사리 팔아 공부를 시키고자 한다.
그 도가 너무 지나쳐 도시에 인구가 넘치고 과외학원이 범람하며 어린 대학생이 떼돈을 만지고 교수가 쇠고랑을 차며 청소년 자살 사건이 속출하는 실로 크나큰 사회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그래서 입시제도를 나무라는 소리는 높지만 국민의 의식을 고치는 일에는 소흘한것 같다.
큰집에 고급 승용차를 갖고 남을 부리며 사는 삶이 행복해 보이던 농경사회나 공업화 사회도 이미 자나가 가치관이 바뀌고 있는데 말이다.
자기의 타고난 재주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세상을 위해 이웃을 위해 유익한 일을 신바람나게 성공적으로 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자아실현인이 아니겠는가?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이 세상 어디엔가서 좋은 일에 기여할 수 있게 각기 다른 「탈란트」를 주어 창조 하셨다(에페소 2, 10).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개인차가 있게 지으신 것이다.
그런데도 자녀의 정성이나 능력은 생각치 않고 높은자리ㆍ편한자리를 향한 대학이나 일류만을 탐하게 한다면 결국 자녀에게 좌절과 불행만을 가져다 주게 된다.
자기의 취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로 일생을 암울하게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가 하면 「토니 브란더」는 비록 두 팔도 없이 태어났지만 발가락으로 기타를 연주해 수 많은 청중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기립박수속에 교황의 포옹을 받으며 「장한 아들」이란 칭호를 얻은 이야기는 신선한 감격을 준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하느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을 불교에서는 각자(覺者)라 하고 유교에서는 군자라 하며 우리는「중생(重生)한 사람」이라 한다.
인격의 완성, 「완전한자」가 곧 교육의 목표요 인생의 도착점이다. 그리고 행복의 정상이다.
그렇다면 자녀의 학과 점수나 일류대학보다 더 먼저 중시할 일이 있음을 깨닫자. 인격의 성숙은 하루 아침에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크면 제가 알아서 하겠지』 『사회가 안그런데…』 『우리만 질 수 있나?』하는 등의 이유를 들어 허영을 쫓아 자녀의 행복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갈등을 가속시키는 죄인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미래 학자들은 한결같이 주장한다. 매래 사회는 학벌보다 자격증이 중시되고 성적보다 성품이 더 중요하며 지휘자 보다는 봉사자가 존경 받는다고.
가진자보다 나누는 자가, 똑똑한 사람보다 덕망있는 사람이 출세하게 된다고 한다. 21세기에 우리나라에도 20만종의 직업세계가 펼쳐질때 보수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더 관심사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하느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은 깨끗하고 단단한 빈 그릇이다. 어려서부터 경쟁에서 남을 눌러 이기고 차지한 습성때문에 탐욕의 기름때와 허식과 위선의 찌꺼기로 가득찬 그릇을 소중한 곳에 쓰시지 않는다.
마음이 크고 정신이 곧으며 의지가 굳은 동량지재(棟樑之材)의 특성은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본받고 스승으로부터 훈련되어 가는 것이다.
남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어질고 큰 마음,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정신, 어려움 앞에 유혹 앞에 쉽게 굴하지 않는 끈기있는 의지와 의연한 기백으로 단련된 그릇을 하느님은 귀히 쓰실 것이다.
하느님께서 귀히 쓰실 그릇을 정성껏 빚어내어 주님앞에, 사회와 나라에 떳떳이 내놓자. 이것이 자녀를 허락하신 하느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부모로서의 의무요 책임이다.
한해 농사를 실패하면 다음해 다시 지을수 있고 공장에서 불량품을 만들었으면 폐기하고 또 만들면 되지만 자식을 잘못 키우면 한 두 해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집안만의 걱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식의 일평생뿐만 아니라 후손에게까지 잘못이 전수되며 사회와 국가에 끼치는 해독은 참으로 큰 것이다.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만 보내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요사이는 너무 먹이고 지나치게 입혀서 병든 아이들을 키워 안타깝기 이를데 없다.
정성과 자비의 모성애의 손길, 근엄하고 중후한 부성애의 인격이 조화롭게 자녀에게 영향을 주도록 하자. 이러한 가정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다.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기도했다 한다.
『저의 자식을 이러한 자식이되게 하소서! 그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그의 목표는 높게하며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소서.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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