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 10일이면 전세계는 「인권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것은 1948년 12월 10일 UN이 인권선언을 한 날이기 때문이다. 몇년전부터는 한국의 가톨릭 교회도 이날의 바로 전 일요일을「인권주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면 교회는 왜 이렇게 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교회는 인권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교회는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하라고 사회와 정부의 양심을 일깨우고자 하고, 실제로 자행되는 인권침해에 대해 항의하고 시위하고자 한다.
그런데 교회는 어디서 이렇게 할 권리를 얻고 있는 것일까? 교회는 세계질서에 마음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영혼의 구원에나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을까? 누가 교회를 인권의 수호자로 만들었다는 것인가?
물론 교회는 영혼의 구원을 선포하고 중개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지상에 선포해야만 하는데 이 말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지상에다 선포한다는 뜻이다. 지상에서의 이 하느님 뜻에 맞는 질서란 하느님께서 사람의 창조시 다시 말해 사람의 충생시부터 그에게 준 권리, 곧 인권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국가가 실증적인 입법행위를 통해 인간에게 권리를 주기 이전에 이미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그 권리를 받았다는 말이다. 인간은 삶의 권리, 행복할 권리, 자유에의 권리(인간의 기본 범주)를 국가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에게서 이를 빼앗을 권리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하느님께로부터 받았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는 국가는 존립이유가 없는 것이다. 국가는 인간을 위해 있는 것으로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가 인간을 위해 해야 할 가장 고상한 과제가 바로 인권을 보호하는 일인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설포해야 하는 교회는 국가가 이렇게 하도록 끊임없이 상기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 결과란 교회가 국가와 더불어 언제나 평화스럽게 협동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국가와 항상 긴장상태에서 대립할수도 있다는것일 것이다. 구체적인 예 몇가지를 들어보자.
정부와 사회는 낙태를 홍보하나 교회는 이에 항의하고 태어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삶의 권리(인권!)도 강조한다. 국가는 어떤 예외도 없이 일반적인 국방의 의무를 요구하고 교회는 양심의 이유로 이를 거부할 권리(양심의 자유에 대한 인권!)를 요구한다. 국가는 민주적인 권리를 부인하나 교회는 국민의 정치적 자아결정을 요구한다. 국가는 노동자가 아무 말도 할수 없는 경제체제를 유지하려 하고 교회는 노동자가 공동결정을 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조직으로서의 교회와 국가간의 갈등일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크리스찬의 내면에서도 역시 나타나고 있다. 시민으로서의 크리스찬은 한편으로는 나라의 법에 구속되는 것을 알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크리스찬으로서의 양심의 의무를 알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결국 갈등의 국면에서는 인간보다는 하느님께 더 순종해야 한다. 만일 국가가 어떤 요구를 함에 있어 인권을 침해한다면 그에 따르지 않는 일은 올바른 덕행이 되겠고 순종이 오히려 죄가 되는 것이다.
인권주일을 맞아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디모테오에게 말한 경고를 한번 더 상가하고자한다. 『말씀을 선포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꿋꿋이 계속하시오. 관용과 가르침을 다하여 꾸짖고 나무라고 훈계하시오』(2디모4, 2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 이렇게 교회가 선포하고 있는 이 말에 인권은 포함된다.
그렇지만 바오로 사도의 이 요구를 따르기에는 교회는 자주 너무 겁을 먹고, 너무 주저하며, 지나치게 편안하고자 했던 것같고 또 현재도 여전히 그러한 듯하다. 그래서 교회는 지나치게 정부 편을 든다는 비판을 면치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왕좌와 제단 간에는 거룩하지 못한 결탁이 있었고 또 여전히 그러한 경우가 보인다. 말하자면「종정(宗政)유착」이라고나 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봐서, 교회의 장래는 이러한 종정유착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선포하는데 즉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그러하다는 것에만 달려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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