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수서비리니 뇌물외유니 하던 국회의원들의 망신살은 돈에 대한 절제없는 탐욕에서 비롯됐다. 청중들앞에서 공약을 내걸고 표를 구걸할때는 모두가 멸사봉공(滅私奉公)에 다 청렴결백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당선만 되면 언제 그런말 했느냐는듯이 물신주의(物神主義)의 노예가 되는게 이즈음의 국회의원이다. 이권에 개입해서 삥땅을 떼는 삶, 기업이나 관공서를 얼러대며 뇌물을 유도하는 사람, 인사청탁에다 편의알선 등 돈냄새 나는 곳이면 물불을 헤아리지 않는게 국회의원들의 생리라면 지나친 매도가 될것인가.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국회의원을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돈보다는 정치에 뜻을 두는게 국회의원의 본디 속성이며 돈은 정치를 위한 윤활유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돈없이 국회의원이 되고 의정활동을 수행키 어려운 것이 오늘의 국회의원이고보면 그들의 물질적 탐욕은 돈 그 자체에 목적이 있지않고 수단으로서의 돈이 필요한것 뿐이다. 비서관도 몇 거느리고 고급승용차도 굴리고 또 품위에 걸맞는 생활을 유지하는데에 나라에서 주는 급료가 형편없이 적은 돈임을 세상이 다 안다. 어쩔수 없이 필요한 돈마련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면 정치판의 불가사리도 되고, 부정부패의 볼품없는 정상배로도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정한 돈을 탐하는 자가 어디 국회의원 뿐이랴. 우선 관광버스를 세워놓고 지역국회의원집에 전화를 거는 유권자들을 생각해보자. 한표 찍어주고 그 대가를 돈으로 바라는 유권자가 있는한 깨끗한 국회의원, 일 잘하는 국회의원은 기대할수 없다. 애국심이 강하고 유능한 국회의원은 깨끗하고 반듯한 유권자들이 만든다. 유권자는 손내밀어도 좋고 국회의원은 청렴결백해야 하는 법은 이 세상에는 없다.
지난 연초부터 꼬리를 물고 터져나온 예체능계 대학 부정입시사건은 학생ㆍ학부모들은 물론 온 국민들을 분노케하기에 족했다. 그러나 터져나왔으니 망정이지, 그런 부정이 음성적으로 자행되어왔다는 사실은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제자식만 잘봐달라고 국민학교때부터 담임선생에게 돈봉투를 내미는 학부모, 제자식만 좋은 성적 따겠다고 고액비밀과외를 일삼는 학부모가 있는 이상 예체능계 대학입시부정은 근절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원산지인 영국 국회의원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우리네 국회의원은 새 모델의 고급차가 나올때마다 차를 갈아탄다. 『선생의 ○은 개도 안먹는다』는 동서고금의 속담은 교육자가 봉사와 헌신을 근본으로 삼는 청직(淸織)이란 뜻인데 우리네 예체능계교수들은 호화별장에다 골프에다 또 걸핏하면 외유(外遊)에다 재벌흉내나 내고 산다. 이같은 자기직업의 본의(本意)를 착각하고 사는 사회지도층의 숫자에 반비례하는 것이 그 사회의 건강의 척도이다.
돈 좋아하고 탐욕스럽기로는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도 마찬가지일성 싶다. 강남의 새로 지은 교회들의 건축비가 대충 얼마나 될것인지 헤아려본 사람은 많지않을 것이다. 거대교회 호화빌딩에만 하느님이 찾아오지 않을진대 집만 잘지었다고 종교의 본의의 영육간의 구원이 있는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은 가난하고 고독한 그러나 절실하게 하느님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곁에 임한다는것이 종교의 본의이기도 하다. 돈을 탐하는 국회의원이 온전한 의정활동을 하지못하고 레슨에나 몰두하고 입시때 돈많은 학부모들과 사교나 벌이는 예체능계교수가 훌륭한 교직자가 될수 없는 이치와 똑같이 연보돈이나 게걸스럽게 챙기고 거창한 건물이나 짓는 교회에는 하느님도 외면하고 구원도 내리지 않는다.
물신주의가 팽배하여 온갖 사람들이 돈을 쫓아 혈안(血眼)이 되고 이로인하여 사회기강이 깨지고 도덕이 몰락하여 공동체적 위기의식이 고조된 세상이라해도 학교나 교회마저 돈에 매몰되고 있다는것이 우리 사회의 현안의 핵심문제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속의 사회는 어차피 돈의 가치가 중시되고 돈의 위력이 정신적 가치를 압도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돈에 의해 상처받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치유하는 사회적 역할이 교육이요 종교이다. 형식적으로나마 빈부의 치이를 초월하는 유일한 곳이 학교와 교회임이 이를 입증한다.
학교와 교회가 인간의 천부적 능력을 계발하고 피곤한 영혼을 위로하는데 돈을 앞세울때 그 기능은 정지된다. 돈봉투를 자주 바치는 학생이 우대받는 학교와 헌금을 많이 하는 신도가 구원을 받는 교회는 우리사회에서 제구실을 다하지못하는 존재다. 사회가 아무리 돈에 찌들고「하느님의 능력보다 돈의 위력이 앞서는 사회」라 하더라도 학교와 교회만이라도「돈의 위력」에서 벗어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있고 장래가 있다. 반대로 가난한 학생의 자존심과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을 돌보지않은채 돈으로 치장한 고루거각(高樓巨閣)의 학교와 교회건물이 난립하면 그 사회는 자정(自淨)의 능력을 상실한 희망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가난하고 초라한 교회에 축복이 있고 하느님이 항상 그들을 향해 창조의 역사(役事)를 벌인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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