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한평되는 아파트에 9년째 살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주변머리가 없다고 농담을 한다. 다른집은 두세번씩 이사를 다녀 재산을 늘려 나가는데 여태껏 뭘 했느냐는 거다. 사실 입구를 같이 쓰는 사람들을 보면 적게는 두번 많게는 너덧번씩 다른 얼굴들이다. 처음 함께 입주했던 사람중에 벌써 두세배로 집을 늘인 사람도 있고, 당시 집을 팔았거나 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 7~8년전 시세 그대로 전세를 사는 이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가만히 있어 중간에 든 격이 되었다.
우리집에 오는 손님마다 아직도 구닥다리 냉장고 고대로냐고 성화다. 거의 15년전 구입했던 덜덜거리는 냉장고다. 말로야 월간 전기료가 월부 구입비와 맞먹는다고 할수 있겠으나 새 물건을 가진다는 것이 어쩐지 남의 몫을 채뜨리는 것만 같아 썩내키질 않는다.
우리가「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지고 있음으로써 만족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을 얼마나 언제까지 움켜쥐고 있어야 할것인가? 지금 목이 말라도 내일의 갈증이 두려워 물이 가득찬 샘가에 서서 또다른 목마름에 허덕이고 있다.
내가 명예를 가지려 함으로써 남의 명예를 침해하게 되고, 내가 부(富)를 축적함으로써 남이 가져야할 것을 내가 챙기게 된다. 오히려 베풀고 나누어 줌의 기쁨을 남의 몫으로 돌리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우리가 지식을 소유하는 형태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식자의 접근을 막게 되고 권력을 내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힘 없는 자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많이 가지고 싶어 한다. 언제나 어떤 결핍에서 불안하고 초조해 한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불과 몇개 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좋고 아름다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항상 하느님의 은총에 덮혀 있다. 살아있는 육체와 정신은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다. 우리의 이웃들은 남부럽지 않은 사랑으로 우리주위를 밝히고 있다. 태양이 점점 식어간다지만 아직은 우리 인류에 양기를 공급하는데 손색이 없다. 까마득한 2천년전에 예수님 같지만 지금, 여기, 우리안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고 계신다. 그럼에도 돈, 권력, 명예 등 몇가지 안되는 것이 좀 부족하다해서 그리 절망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예수님은 성부와의 부자관계까지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당신 모친과의 관계까지도 우리에게 넘겨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엇을 가지려고 자꾸만 자꾸만 애를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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