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자기의 모든것을 빼앗긴 고통중에도 찬미하였다고 했지만 나는 하느님을 찾지 않았다. 두번 다시 하느님께 순종하고 싶지 않았고 쉽게 주님을 저버렸다.
막내는 어쩌다 의식이 잠깐 들면 비명을 질렀고 그때마다 몰핀 주사를 맞고 다시금 잠이 들었다. 모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러하겠지만 막내가 살아나고 대신 내가 당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4일 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나는 초조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오후에 가해자인 운전기사가 찾아왔다. 그 사람은 막내의 손을 잡고 얼마나 아프겠냐면서『내가 너를 이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흐느껴 울었다.
그날 최전방으로 배달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아주 끔찍한 사고현장을 보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도 사고를 내게됐다며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 사람과 가족들은 매일 새벽기도를 하며 하느님께 간구 드린다고 했다. 그후 4~5일 만에야 막내는 정신이 들었다.
남편은 퇴근하여 막내의 부은 눈을 벌리고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리고 보이느냐고 물었다. 막내는 전혀 안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남편도 좌절감에 한숨을 쉬었다. 날카로운 비수가 우리 부부의 가슴속을 파고 들어와 박혔다.
상처의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막내를 지켜보면서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함을 한탄 하다가 문득 십자가에 달려 도와주지 못함을 한탄 하다가 문득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다 돌아가신 예수님과 그 곁에서 그것을 지켜 보시었던 성모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꼭 지금의 내 처지와 같지 않았을까? 나는 다시금 깨닫게되었다. 하느님께선 항상 나의 곁에서 사랑을 베풀고 계셨으나 내가 눈멀고 귀먹은 탓에 못보고 못들었음을 용서 빌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저 산도 옮기리 믿음으로」하는 성가가 저절로 불러졌다. 그렇다. 한번 죽음의 늪에서 건져주신아인데 두번째라고 보고만 계실리없다. 막내를 통하여 나를 곧은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러한 값을 치르게 하셨음을 알게 되였다.
나는 그길로 성당에 달려갔고 미사를 봉헌하고 왔다. 막내의 소식을 들은 교우와 자매님들께서 틈히 나는 대로 병원을 찾아 주셨고 그분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보면서 난 큰 힘을 얻었다.
두주일 후에 상처는 눈에띄게 호전되었고 왼쪽눈도 부기가 어느정도 빠졌다. 그날도 남편은 예외없이 병실의 불을 끄라고 하곤 손전등을 막내의 눈에다 비추었다.
『조금이라도 보이면 말해봐』하였으나 아이의 대담은 『아빠 안보여 안보여…』하면서 울었다. 우리도 함께 흐느꼈고 잠시후 남편은 조용한 말로 『지성아 열심히 볼려고 해봐』하면서 다시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때 막내는 『응 보인다 보여 아빠 보여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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