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네에 부잣집이 있었다. 그집 아들은 일찍이 장가를 들어 가정을 가졌지만 일에는 취미가 도무지 없었다. 매일 먹고 마시며 흥청댔다. 부모가 세상을 뜬 후 얼마되지 않아 땅도 집도 가진 재산도 다 날려버렸다. 아내는 친정으로 보내고 자기는 혼자 동가식 서가숙하였다. 주위에 북적대던 친구들도 점점 사라지고 건강 또한 말이 아니었다. 밥도 얻어 먹어야 했고 몸살도 혼자 견뎌야 했다. 헤프게 썼던 돈이 정말 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생각하다 못해 옛날 자기 부모 밑에서 심부름을 하던 박서방이 문득 떠올라 그를 찾았다. 지금도 지게 품팔이를 하는 박서방은 어려운 살림에도 저녁상을 차려내 왔다. 그래도 이 청년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사정을 털어 놓았다. 풍문에 듣던 금광을 찾아가 일을 하고 싶으나 노자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 다음에 은혜를 꼭 갚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박서방은 『은혜는 고사하고 부디 성공하라』 면서 그동안 어렵사리 모아둔 돈 30전을 선뜻 내주었다. 그는 이제 광부로 일을 할수 있었고 마침내 큰 금광의 주인이 되는 갑부가 되었을 때는 이미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다시 금의환향한 그에게 옛날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이들을 다 뿌리치고 박서방을 찾았다. 박서방은 이제 늙고 병들어 지게질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은혜를 갚을 때가 왔다 싶어 인사만 마치고 돌아갔다. 사람을 하나 불러 박서방 집에 돈 30전을 전해주게 하였다.
『10여년전에 가져간 돈을 잊지 않고 보내오다니 매우 똑똑한 사람이다!』 하고 박서방은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그 이튿날도 30전을 박서방에게 보냈다.
『아 이사람이 어제 돈보낸걸 잊었나? 또 돈이 왔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보냈다. 하도 이상하여 박서방은 심부름꾼을 따라나섰다.
『여보게 보내준 돈을 잘 받았는데 왜 깜빡깜빡 잊어버리고 자꾸만 보내는가?』
『10년전 제가 쌈지에서 30전을 받는 순간 너무 감사해서 성공한 후에는 매일 30전씩 보내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만한 돈이 필요 없네 30전씩 30일이면 9원이 아닌가!』
한달에 2원 정도면 고급생활을 하던 시절의 정이 담긴 이야기다. 한해를 결산하는 연말이 다가오니 세상 분위기가 이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하느님한테 받은 은혜를 올해도 또 갚지 못하고 넘긴다. 박서방처럼 기대하지는 않으시겠지만 내 다리와 가슴이 먼저 저려온다. 매일이 아니고 30전 한번만 갚아도 흐뭇해 하실 하느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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