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전례에 쓰이는 말을 자국어로 할 수 있게 한 이래 최근에는 평신도가 미사 때 성체분배까지 할 수 있게 되는 등 전례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커진 것이 사실이다.
4반세기 전 막을 내린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전례에 쓰이는 말을 거의 모든 신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 대신 자국어를 쓸 수 있도록 한 것은 당시 실로 획기적인 용단으로 받아들여졌고 모든 이가 바라고 기다리던 것이기도 하였다.
전례에 쓰이는 말을 자국어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신자들이 이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인 만큼, 전례에 쓰이는 말을 자국어로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바티깐 공의회의 정신을 극명하게 표시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을 사용함은 교회가 세상에 적응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 세상과 대화하고자 하는, 그리하여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세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종래에는 교회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침묵 중의 세상에서 생명을 구해주는구원선, 즉 「노아의 방주」로 자처하던 고고한 자세를 극복한 것이 바로 제2차 바티깐 공의회였던 것이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관은 이러한 교회 중심적 세계관을 탈피하여 교회는 세상 안에서 현대인들의 실존적 상황에 눈을 돌려 그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를 함께 나누며 세상을 위해 구원의 성사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말하자면 세상 지향적, 세상 중심적 교회관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교회관은 평신도들이 참여하지 않고서는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바로 평신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상의 모든 분야에 현존하게 되기』때문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7항).
평신도들이야말로 세속성이 고유한 특성이므로 세상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이용하여 하느님과 대화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현대 질서를 재건함으로써 세상을 하느님께 봉헌한다.
이런 의미에서 평신도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 예수를 통해 세상을 하느님께 다시 바쳐드리는 사제이다.
세상을 봉헌하는 것이야말로 평신도들의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가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교회 안에서의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개혁하여 이를 봉헌하는 눈에 안보이는 교회의 전례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는 교회의 전례는 참 뜻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이 세상은 평신도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부름받은 영역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하느님과의 전례적 대화를 세상과의 대화로 연결시켜야 한다.
평신도의 일차적 사명은 교회 공동체를 건설, 발전시키는 데 있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의 각 분야에서 말과 생활의 증거로써 복음화 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는 것이다.
평신도들이 전례에의 능동적 참여를 위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의 봉사와 임무에 지나치게 강렬한 관심을 가짐으로써 전문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분야에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든다면, 이는 평신도가 성직자화(聖職者化)하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이는 곧 신앙과 생활의 부담한 분리를 심리적으로 자기도취에 빠져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 안에서 평신도가 해야 할 일을 성직자에게 미루고 교회 안에서 성직자가 해야 할 일을 평신도가 떠맡으려 한다면 교회에 커다란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평신도의 교회로 알려져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이 땅의 교회의 평신도들은 과연 세상을 봉헌하는 전례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그들은 혹시 교회 참여를 교회내부 지향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들은 과연 일상생활 때 자신들의 신앙과 일치하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선택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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