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우리 아빠가 죄를 많이 지으셨나요? 그렇더라도 우리 아빠를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우리 아빠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대신 저의 생명을 드릴께요. 제 다리는 아프지 않으니까 아빠께 주세요. 그러면 아빠가 집에 오실 수 있잖아요. 네?』
이 기도문은 8살짜리 작은 아들이 하느님께 울면서 간절히 드린 기도입니다.
1986년 11월 4일
2만2천9백볼트(V) 고압선에 남편이 감전 되었다는 엄청난 소식에 저의 온 몸은 떨리기만 했습니다.
저는 신자가정에서 태어나 유아 영세를 받고 곱게 자라 좋은 남편 만나서 조용히 평범하게 사는 주부였기에 갑작스런 사태에 그저 무력 할 뿐이었습니다.
『면회 사절! 중화상 환자』
빨간 표말이 붙어 있는 병실에 들어서니 침대에 엎드려 있는 남편의 모습이 첫 눈으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머리로 들어간 전기는 온 몸을 휘젓고 터져나가 성한 곳이라곤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내장 기관(심장, 위장, 신장)은 물론이고 중화상으로 등의 살을 모두 도려내 움푹 패여 있었고 머리는 삭발을 하고 얼굴은 속눈썹까지 타 버리고 손바닥의 살점도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고 다리도 부분 구멍이 나있고 새끼 발가락은 덜렁거리고 온 몸에는 피와 진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몸의 각 부위에 여러 가닥의 줄을 달고 눕지도 못하고 엎드린채 혼수상태로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전 하느님을 원망부터 했습니다.
『하느님 어찌하여 제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저는 미사 참례는 물론이고 레지오에 주일학교 교사에 성서 공부까지도 착실히 했습니다. 그런 내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당신이 도와주실 수도 있으셨잖아요?』
전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저는 남편의 죽음이 두려워 다시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느님! 도와 주세요. 남편을 살려 주세요. 아직은 데려 가시면 안됩니다. 어떤 모습으로 남아도 좋으니 살려만 주세요. 우리 아이들을 보시어 도와주세요.』
소생 불능이라는 모든 분들의 판단 앞에 저는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사흘 밤을 지나 그이는 눈을 떴습니다. 의식을 찾아 절 알아보는 기쁨도 잠깐이고 그 순간부터 사지 마비가 되어 감각을 잃어버리고 아무런 동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시력은 초점이 맞지않아 사물이 여러 개로 보이고 손으로 무엇을 잡지도 못했습니다.
온 몸이 화상으로 만질 곳도 없는 상태에서 사지 마비가 왔으니 대ㆍ소변 받아내는 것이 문제였고 파상풍 감염 우려, 내장 기관들의 상태 등으로 생명을 보장받지 못한 속에서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고통도 무슨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일은 주어진 고통을 잘 참고 받아들이는 일이다.』이런 생각으로 남편의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이번호부터 그동안 잠시 중단됐던 신앙수기가 다시 연재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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