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필리핀에 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보도를 접하자 우선 셀라의 안부가 궁금했다.
내가 셀라를 알게 된 것은 3년 전 필리핀 남부의 큰 섬인 민도르를 여행하는 길에 시골부락에 3일간 머물게 되었을 때다. 마닐라에서 4시간만에「나환」이라는 밀림속의 작은 동네에 도착했다. 그곳은 너무나 습해서 원두막처럼 높다랗게 집을 지어 아래층은 기둥만 남겨 두어 습기를 차단하도록 지어진 집이 많았다. 모기장과 모기약을 다시한번 챙기고 수녀님이 챙겨주신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은 다음 주위를 돌아보려고 밖으로 나왔다.
가로수처럼 죽 늘어선 야자나무 사이로 동네꼬마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공놀이를 하고 있는 조그만한 시골학교가 눈에 띄었다. 학교주위를 돌아보는데 마침 방학이라 뒷정리를 하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께서 낯선 이방인인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이리저리 학교구경을 시켜 주었다. 비록 시골이지만 학교시설은 잘 되어 있었다. 밀림동네에도 우리의 시골공소처럼 신부는 귀중한 존재였다. 본당에서 신부님이 일년에 서너 차례 밖에 나오시지 않는다며 반장댁에서 차를 마시자고 연락이 왔기에 기꺼이 갔다. 비교적 생활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반장 집에 들어서면서 홀에 걸려있는 십자고상이 단번에 집안분위기가 어떤가를 짐작케 했다. 웃고 있는 부인은 아까 학교에서 인사를 나눈 교사였다. 부인은 중학생인 딸 셀라를 소개하며 남동생하나가 선교사로 나가 있다며 즐거워했다.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셀라는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귀국 후 몇차례 서신 연락이 있는 후에 소식이 끊어졌는데 얼마 전에 대학에서 비서학을 공부한다며 연락이 와 참 반가웠다. 19살 생일을 맞았다며 초콜렛 선물을 빨리 보내달라는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번엔 내가 답장을 보낼 차례인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터에 마닐라에서 일어난 큰 지진 소식을 접하고 보니 편지를 빨리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큰 도시라도 아는 사람이 없다면 낯설고 의미가 없어진다. 비록 잘 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셀라가 마닐라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지진의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님을 느낀다. 우리가 서로에게 비록 작은 관심과 사랑이라 할지라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평화스럽게 되지 않을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