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는 성탄장식이 요란스럽고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은 더 한층 성탄절의 축제기분을 돋구어 주고 있다. 금년 성탄절은 메시아의 오심이 우리의 절실한 현실문제로 와 닿는 느낌이다. 성탄절의 의미가 더욱 새로와 짐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성탄절의 신학적인 의미를 한번 새겨본다. 인간이 태초에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영원한 인간성이 그대로 초월적인 하느님의 나라에서 그뜻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격자인 인간은 자신의 축복을 스스로 느끼고 그 축복에 상응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했다. 다시말해서 자신의 작은 참여와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의지의 행동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격의 존엄성을 스스로 수용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시험에서 불행히도 실수를 저질렀다.요컨대 소위「원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신과 인간간에 맺어진 질서의 파괴였다. 신과 인간사이에 있었던 의(義)의 질서가 무너진 것이다. 윤리차원에서 고찰한다면 무서운 죄요 질서의 차원에서 본다면 질서의 붕괴였다. 이런 엄청난 사실이 전제된 이상 이것에 대한 보상의 행위가 따라야 했다.파괴된 질서의 원상복구라는 새로운 상황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범한 엄청난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 강생육화한 것이다. 강생구속의 현의가 곧 성탄절의 기본 뜻이다.
죄에 대한 보상을 치루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어떤 양상으로 이세상에 오셨는가? 메시아의 기본정신구조는 우리에게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신이 육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적인 교훈이 곧 성탄절의 교훈일 수 밖에 없다. 원조들의 범죄의 상황을 먼저 고찰한다면 그들은 상대적인 인간이 절대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엄청난 착각을 범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지나친 교만에 도취되어 그런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이 교만의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 신은 인간으로 전락했다.이것은 인간 교만에 대한 도전이었다. 교만으로 잃어버린 천국을 겸손으로 되찾아주시는 죄에 대한 역현상이 곧 강생구속의 신비를 낳게 했다. 교만은 자칫 잘못하면 권력의 탈을 쓸수있고 금력의 탈을 쓸수도 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메시아는 권력과 금력에 도전하기 위해서 보잘 것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났고 그것도 태어날방 한칸도 없을 정도로 가난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이 이 시대에 주는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우리의 통치자가 소리없이 뒷문으로 들어오셨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그분이 자신이 누울 수 있는 자리하나 없이 알몸으로 가난뱅이로 오셨다는 기가 막힌 이 교훈을 우리는 생각해본다.
물질만능주의로 인간성이 흐려지고 금력의 노예로 살고있는 우리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는 것이 성탄절이 주는 우리의 교훈이다.
돈 때문에 인신매매를 자행하고 돈 때문에 귀한 남의 명예를 훼손하고 돈 때문에 인간을 향락의 구덩이로 몰아놓고 돈 때문에 부정입학을 시키는 맘몬(Manmon)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 성탄절이 주는 가난의 정신은 여느 때보다 귀한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물질은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요 수단이다. 방법과 목적의 개념이 뒤바뀌어 방법 때문에 목적이 흐려지는 이 시대적인 인간 의식구조야말로 또다른 하나의 질서를 파괴하는 과오을 범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대에 군림하는 메시아의 정신은 이 세상에 한층 더 희망을 두고 빛을 던져주는 것이기에 이번 성탄절은 더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철학에서는 모든「악」은「질서의 파괴」라고 규정한다.오늘의 사회적인 계층의 질서, 정치질서, 교육질서 한마디로 인류의 기본인 윤리 도덕적인 질서가 파괴된 상황에서 악의 소용돌이가 세상을 짓누르고 있는 이 시대에 메시아의 오심은 더욱더 절실한 바램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려 오시는 구세주 강생은 너무나 커다란 인류의 축복이고 선물이었지만 그것을 수요하는 우리 인간의 자세가 문제다. 다시 말해서 그분이 오셔서 인간이 범한 죄를 보상하여 새로운 의(義)의 질서를 찾아주셨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인간에게는 아직도 교만과 물질의 멍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성탄절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류의 구세주는 우리 각자에게 자신의 구원을 추구하는 각자의 메시아이어야함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말씀하셨다.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할때는 우리 없이 우리를 창조하셨지만 우리를 구원하는 상황에서는 우리 없이 우리를 구원하시지는 않는다』.
성탄절이 하나의 축제로 끝나버린다면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역사의 허황된 사건으로 끝나고 만다.요컨대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우리 각자의 새 모습을 찾아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크리스찬들의 생각이나 삶의 변화가 없다면 성탄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성탄절에 작은 정성과 사랑을 담아 불우한 이웃을 찾아 그들을 마치 세상에 오신 메시아로 생각하고 작은 주님의 뜻을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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