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육신을 지니신 채 지극히 높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이끌어 올리심을 받으신 큰 축일을 맞이하여, 성모님의 풍성한 은총을 만끽하면서 어리석게 살아온 과거를 반성해 봅니다. 자만의 함정에서 늦게나마 이제 회두하고 당신의 훈훈한 음성을 경청할 수 있도록 하심은 비천한 저에게 과분한 은총이며, 이 영광스런 기쁨을 민족의 큰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겨레와 함께 모두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의 성모여!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이 땅의 자녀들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습니까? 백두산에서 한라산에서, 한강에서 두만강에서, 평양과 서울에서, 광주와 대구에서, 부산과 전주에서, 제주도에서, 울산에서, 아니 농어촌과 탄광에서, 대학과 중앙청에서, 그리고 교도소와 국회에서, 성모여! 휴전선에서 얼마나 울으셨습니까?
당신의 대축일에 광복을 주셨는데 그 의미를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살아 온 철부지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요.
평화의 모후여! 이제 당신께 모든 것을 드리오니 받아주시고, 간절히 갈구하는 기도를 받아주십시오. 한반도가 하나가 되게 도와주소서. 우리는 이제 사상도, 체제도, 독재도, 어떤 구조적 걸림돌도 모두 싫증이 났습니다. 오직 한 민족이 함께 그냥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 극소수의 괴변과 변명과, 또 무슨 조건들이 그만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대대로 이어온 금수강산이,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두 조각난 채 세계의 화제거리가 되고 있는 저희들에게 용서를 내려 주시고 거급 가시 돛친 큰 매로 두둘겨주십시오. 그래도 정신이 딴 곳으로 돌아가면 성모님의 사랑의 용광로에 던져 녹여 주셔서 새 자녀가 되도록 잡아 주소서.
천주의 모친이여! 우리의 모후여! 경축의 날에 새 자녀된 결단을 드리오니 받아주소서.
지난 날의 소극적인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생활하며, 한 사람의 소외된 이 없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민족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수 갈래로 분열되고 불신이 증대하고, 날로 비인륜적인 파렴치꾼들이 우글거리는 거리를 청소하겠습니다. 윤리도덕이 썩어진 생기가 없는 사회를 살리는 길은 하느님의 정의가 강물처럼 넘쳐야 하는데, 그날을 기다림 속에 그냥 살아왔지만, 이제는 뛰어다니며 실천하고 전파하겠습니다. 그런데 성모여! 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그리스도인과 함께 하겠사오니 일으켜 주십시오.
어머니! 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은 하느님의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지배하는 한반도가 될 때, 통일도 평화도 온다고 믿습니다. 큰 지구촌이 급하게 변화하는데 이 땅은 변화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성모님! 강원도 탄광에서 처절한 근로자의 임금투쟁 현장에서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생사의 순간에,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제의 중재로 해결하여 평화를 찾게 된 뒤에, 민중들은 오직 사제의 사랑과 정의에 감탄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제는 감옥에서 이 염천에 고생하시니 얼마나 비통스런 일입니까? 사제를 구출하여 주십시오. 일치의 자녀가 되도록 갈망하시는 성모여! 그 사제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편, 저 편을 들지 않고 언제나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본보기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당신의 착한 자녀가 꼭 되도록 손목을 잡아 주시오. 사회정의에 무관심한 형제들에게 당신의 감미로운 사랑을 주시고 옆길로 가지 않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지금은 형제들이 도덕적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형제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민족을 사랑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의 편에서 정의를 드러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는 정의가 들꽃처럼 한반도의 어느 곳에서나 가득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어머니시여! 이제 부족한 저희들이지만 안일한 긴 잠에서 깨어나 성모님의 나라건설에 봉헌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분부대로 빛과 소금이 되고 누룩이 되기 위해, 부단한 정성과 기도와 희생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복신앙의 범주에서 벗어나서 민족의 평화와 구원을 위해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정의가 메마른 사회는 희망이 없고 죽어가는 사회입니다. 이럴 때 교회는 텅비어버릴 것입니다.
한국의 성모여! 희망의 길이 있습니다. 이 사회를 바로잡고 정의로운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한 방안은 바로 우리가 일치하며 순례하는 것입니다. 순교자의 피가 묻힌 성지를 순례하면서 신앙을 쇄신하는 일입니다. 순교자의 삶을 묵상하면서 그 무언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철저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모여! 사랑의 어머니시여!
모처럼 당신께 민족이 하나되게 도와주시도록 기도하며 간청하고자 붓을 들고 보니, 무례한 내용이 많았습니다만, 저는 성모님께 밤새우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모여! 정의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도록 도와주소서! 이 민족이 하나되게 도와주소서! 지금 억울하게 당하고 울고 있는 형제들의 마음을 만져 주소서! 도시와 농어촌, 노동자와 농민, 빈민형제들이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이 사회가 되도록 도와주소서!
진정 당신은 이 고통의 민족에게 평화와 정의를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민족의 성모여! 부디 이 민족을 당신의 손에서 떨쳐버리시지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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