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들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오는 만학도가 제법 있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같은 학년에서도 나이 차이가 10년쯤 생기는 수가 있다. 얼마 전에 성소피정이 끝난 다음에 봉사자로 일했던 신학생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눈 적이 있다. 신학교에 들어와 보니 고등학교 후배였는데 학년으로는 한참 후배이나 선배가 되어 있고 더구나 이젠 같은 본당에 보좌 신부님으로 오셨으니 깍듯이 예우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우리는 작아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구 신학생들 중에는 형제간에 신학생인 경우가 셋이나 있다. 이들 중에는 동생이 먼저 부제서품을 받게 되었는데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교우들이 『어이고, 축하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는 뽕에『예? 뭐 말입니꺼』하고 보니 동생이 부제서품을 받게 된 것을 축하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형이니까 당연히 먼저인줄 알았던 모양이다. 동생이 신학교에 들어 가고 난 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갔더니 동생보다 학급생일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나는 군총장교우보생 제도가 있을 때 시험을 치룬 덕분에 동기들이 사병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 공부를 했고 그 바람에 동기들보다 3년이나 빨리 신부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대의원 직책을 맡았는데 리더쉽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이가 제일 적은 탓에 심부름꾼으로 적당하다는 말에 표결을 거치긴 했지만 거의 뒤집어 씌우기에 휘말려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일을 하다 보면 늘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뒤따랐다. 「소풍날 비가 와서 부득이 전체 의견을 수렴할 시간도 없이 장소를 변경한다든지」「학년별 대항축구시합에 선수로 뽑는, 사람이 늘 내가 친한 사람이라든지」하는 일이 몇몇사람에게는 못마땅한 처사가 되곤했다.
교구에 들어와서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면서 회장단과 임원들간의 협조가 원만한 경우도 있었지만 미처 마음을 쓰지 못한 작은 일들이 서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적도 있었다. 비록 큰 직책을 맡은 분이 경험이나 연륜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직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협조를 요구할 때엔 기꺼이 나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커지셔야 할 분과 더욱 작아져야 할 나의 모습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