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사재기 극성이 재연되고 있는 모양이다. 삼복더위는 지났다지만 아직도 한낮이면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히는 이 늦여름에 난방용 기름사재기의 악몽이 되풀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말문이 막힐 뿐이다.
70년대 오일파동 때를 기억해보자. 당시의 오일파동은 석유비축 기금이나 현물 비축분이 없어 고스란히 앉아서 당해야 했던 어려움이었다. 오일파동은 우리 사회생활 모든 면에서 에너지절약 바람을 일으켰고 이 운동은 얼마동안 우리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정부는 또다시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석유파동에 대비한다며 석유비축 기금을 거두어 들였으며 4조원이 넘는 엄청난 기금이 모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저유가 시대가 수년간 이어지면서 에너지 절약정신은 어느틈엔가 우리 생활 곳곳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몇 번에 걸친 기름값 인하는 아파트 관리비의 큰 몫을 차지하던 난방비의 비율을 약화시켰고 사람들은 겁도없이 대형아파트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80~90평이 넘는 초 호화빌라도 부족해서 두개를 터서 사용한다는 얘기도 심심치않게 들려오기도 했다.
대형 TVㆍ대형 냉장고ㆍ대형 에어컨 등등 모두가「대형병」에 걸려 있는 듯 했다. 외제승용차ㆍ외제구두ㆍ핸드백 등등 의류에서부터 가구, 일용잡화에 이르기까지 사치와 과소비의 극을 달려온 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일부 부유층에서부터 나온 이 같은 과욕과 허세는 중산층에 이어 사회 전반에까지 물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는 듯 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오일파동의 위기 앞에 다시금 서게 된 것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오일파동이 예견되는 것과 때를 같이해 정부와 관계당국이 내놓은 대책이란 것이 석유값 인상이라고 한다. 물론 인상은 아니라지만 내년에는 올릴 수 밖에 없다는 관계부처의 발표는 기름을「사재기」하라는 부추김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미 정부가 석유 비축기금의 거의 전부를「보다 시급한 곳」에 써버렸다는 보도가 기름값 인상에 대한「확신」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는 것 같다.
비상시에 쓰겠다고 국민으로부터 특별히 거두어들인「비상금」을 국민의 허락도 받지않고 멋대로 써버린 정부를 자꾸만 믿으라고 한다면 그건 과욕이다.
요행과 운수를 기대하면서 정치운용을 해서는 곤란하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채 사치풍조를 부추기고 과소비를 방조한 정부는 뼈를 깎는 자기 반성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할 것이다.
여름날에 기름 사재기를 하는 국민이 아직도 있다는건 우리가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여건마련이 그만큼 늦어진다는 징표다. 석유파동이 있던 없던 간에 에너지절약은 우리 생활에 바탕이 되어야한다. 한 방울의 기름을 아끼고 사재기의 추태를 버린다면 우리는 에너지파동을 이겨낼 수가 있다. 자원을 아끼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모상따라 태어난 우리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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