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열량이 필요할 것같아 고단백 식단을 짜서 남편이 잠든 시간에 음식을 만들어 자주 먹도록 하였는데, 그 양은 보통 성인이 먹는 양의 2배 이상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잘 먹어내고 소화도 잘 시켰습니다.
그때 제가 병원가족들에게서 얻은 별명은「귀신」이었습니다. 두 아들은 저에게「원더우먼」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체력으로는 그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없다는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힘이 제 힘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체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기에 성령께서 주신 힘이었고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제가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다고해도 남편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등과 엉덩이에 돋아난 새 살과 피부는 조그만 자극에도 벗겨져 피가 나는 고통을 받았고 물리치료시 사지가 끊어지는 고통을 그는 이를 악물고 울면서 참아냈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예수님의 수난 받으심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비길 수야 없지만 흡사한 고통을 전신으로 받아들이는 남편은 제게 있어 작은 예수님이었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 온몸이 붉게 물드는 치료과정에서의 고통, 사지를 찢는 듯한 고통, 이해하기 힘든 고통을 받아들여야 하는 번민의 고통……이런 속에서도 남편은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 드디어 저도 휠체어에 남편을 태우고 물리치료실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때 고급 승용차 뒷좌석에 앉은 귀부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사고 후 6개월째에는 젓가락은 사용 할 수 없었으나 숟가락을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3분의 1은 흘리면서 시작한 식사였지만 우리는 만찬식탁에 앉은 마음이었습니다. 사고 후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7개월째에는 여태껏 아이들과 집안일을 도와주던 막내동생의 결혼으로 집과 병원을 왕래해야 했습니다.
새벽에 세탁과 청소를 끝내고 아이들과 남편의 반찬을 준비하고 아이들 등교시 함께 나와서 남편 저녁식사 후에 소변기와 소변을 모아 두는 통을 침대 곁에 두고 집으로 돌아와 애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한약 달이고 곰거리를 고우고 나면 새벽 1~2시. 자리에 누우면 몸이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겁고 방바닥 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듯한 깊은 피로에 쌓였지만 틈틈이 아이들과 함께 성체조배와 영성체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일이 생겨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두 아들은 식은 밥을 챙겨 먹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깨끗이 정돈된 주방을 바라보며 차라리 늘어논 채 있다면 가슴이 덜 아프리라 생각하며 자는 녀석들의 뺨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또 친구들이 아빠와 주말에 외출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엄마를 발견하고는 씩 웃으며『엄마! 아빠 다 나으면 우리도 같이 먹으로 가고 등산도 가고 야구장에도 갈텐데…뭐?』
친구가 부러우면서도 전혀 내색하지 않으려는 녀석의 노력이 기특하고 안쓰러웠지만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는 것 외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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